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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VOL.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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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의 이별을 준비 중이다. 이 말인즉슨 새 차를 샀다는 말인데, 새로 받는 차로 인한 설렘만큼 떠나보낼 헌 차에 대한 애틋함도 꽤 크다. 거짓말 같은가. 물론 새로 산 차를 받아 시동을 걸고 지긋이 속도를 높여 보면 예전의 자동차 생각이야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곧 중고로 내놓을 녀석을 임시로 몰고 다니는 중이니까, 매일이 녀석과의 이별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녀석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가족을 다 태우고 오르막을 오르는 데에는 힘이 부친 듯 덜컹하지만 금세 자기 힘을 찾는다. 트렁크에는 이것저것 다 넣어도, 다시 이것저것 더 넣을 공간이 남아 있다. 5년 전에 장만한 올란도. 7인승 RV로 경제성이 뛰어난데다, (내가 고른) LPG의 경우 정숙도까지 나름 갖춰. 가성비 좋은 아빠차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 본사의 뜻에 따라 공장이 폐쇄되어 자연스레 단종되었다. 타면서도 늘 쓸 만한 차라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다국적 기업의 경제 논리가 지역 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같은 걸 내가 제대로 알리는 만무하지만, 그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녀석을 구입함과 동시에 공교롭게도 둘째가 생겼다. 요즘에는 흔치 않은 아이가 둘인 가정을 이룬 것이다. 4인 가족의 RV라니, 광고에나 나올 법한 어울림 아닌가. 게다가 연년생. 짓궂은 지인들은 7인승 차를 샀으니 아이를 다섯 정도는 낳을 것이냐 농담을 하였다. 물론 뒷좌석은 시트를 펼 새도 없이 트렁크가 되어 유모차와 육아 용품, 아이 이불 등의 차지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운 지 5년 만에 유모차 따위는 필요 없어졌다. 그리고 사각형으로 높게 솟아오른, 어쩐지 균형감이 없어 뵈는, 연비는 갈수록 떨어져 가득 채우고 뒤를 돌아보면 다시 충전소를 찾아야 하는, 녀석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다. 녀석의 핸들을 잡는 동안 나는 이직했고, 승진했다. 글을 썼고, 책을 냈다. 아이 엄마는 두 아이를 지금까지 무사히 키우고 돌보는, 그 위대한 일을 해냈다. 두 아이는 별 사고 없이 다섯 살, 여섯 살이 되기까지 무럭무럭 자랐다. 나는 옮긴 직장의 20년 된 주차장 승강기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사이드미러를 깨뜨렸다. 아내는 아파트 주차장 기둥에 차를 살짝 긁은 적이 있다. 어떤 차가 신호대기 중이던 녀석의 뒤를 박기도 했다. 그렇지만 크게 봐서는 녀석도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제 할 일을 다 치룬 것 같다. 우리 가족처럼. 우리 가족과 같이. 우리 가족을 위해.

최근 가족과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말하자면 녀석과의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될 것이었다. 행로는 녀석의 고향이기도 한 군산이 있는 전라북도로 정했다. 그중 익산에서 우리는 오래 머물렀다. 익산은 본디 ‘이리’라고 불리었다. 옛 백제의 중심부였으며,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백제의 흔적은 미륵사지석탑과 절터 그리고 최근 새로 발굴된 인골이 무왕의 것으로 추측되어 화제가 된 쌍릉이 있다. 먼저 미륵사지석탑으로 향했다. 교과서에서 본 미륵사지석탑의 모습이 여전히 기억난다. 옛 영화를 간직한 쪽의 정취를 끔찍한 남동측면이 모두 무화시키고 있었다. 무너진 석탑의 일부를 시멘트로 메꾸어 버린 것이다. 복원도 수리도 아닌 그저 파괴 앞에서, 인간의 무지함 앞에서 먼 옛날 인간이 만든 탑 하나는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 인간이 탑의 원형을 복구하고 있었다. 복원은 마무리 단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보인 문화재를 되살리는 일이니, 오랜 시간이 걸렸음은 물론이고, 그 정성이 가히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광할한 미륵사 터에서는 경건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천방지축인 아이들은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곳에 천방과 지축이 있었음을, 절터에 쌓인 시간들이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익산역 근처의 구시가지는 미륵사지터와 쌍릉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근대 유물인 것으로 보이는 건물에 오래된 상점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중 몇몇은 빈 상가였다. 정겨움과 스산함이 섞인 공기가 원래 그곳이 고향인 듯 자연스러웠다. 군산과 가까워서인지 내 차와 같은 종의 차도 꽤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더 나오지 않을 차들이 과거의 영광이 흑백사진처럼 그대로 남은 골목길 한쪽에 나란히 평행 주차되어 있었다. 익산 구시가지는 군산이나 목포, 광주 양림동처럼 근대 거리가 본격적으로 테마가 되기 전이라 오히려 진짜 근대에 있는 것 같은 정취를 풍긴다. 어느 건물은 모텔이고 어느 가게는 호프집인데, 아마도 100년 전에도 비슷한 가게였을 것만 같다. 투전꾼이나 거간꾼이 목청을 높이던 곳. 탁류 같은 시절이 관통하던 도시.

여행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의 서해안고속도로는 언제나처럼 행담도 휴게소를 전후로 심한 정체였다. 녀석도 이 여행이 마지막 여행인 것을 아는지 조금 더 묵묵한 것 같았다. 차선을 바꿔 기어를 올릴 때는 가볍게 반항도 한다. 뒷자리의 아이들이 보채는 통에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쩐지 이번 길에는 나도 묵묵하고 싶다. 가속과 급정거를 하지 않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 5년 된 친구를 다룬다. 미륵사지석탑을 복원하는 것처럼 녀석과의 기억을 하나씩 복원해 본다. 하얀색을 사라는 주위의 권유를 무시하고 에스프레소블랙인지 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색의 너를 골랐었지. 그때는 이렇게 상처를 많이 낼 줄은 몰랐었다. 동네 소아과부터 어린이 뮤지컬 극장까지 늘 종종거리는 우리 가족을 싣고 너는 오늘처럼 묵묵하게 경기도와 서울과 가끔은 대한민국 온 거리를 누볐다. 나는 너에게 6만 킬로미터의 주행거리와 갖가지 상처를 남겼지만 너는 복원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달릴 것이다. 익산의 석탑이 제 모습을 찾고, 쌍릉이 발굴되듯이, 구시가지가 아직까지 나름의 가치로 빛을 내듯이.

지하주차장에 최대한 반듯하게 차를 대는 것으로 올란도와의 이별 여행을 마치려고 한다. 자주 정비할걸, 세차라도 자주해 줄걸 하는 마음은 괜한 심경일 테지만, 너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나는 너에게 별로 그런 적 없었던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아쉬운 마음에 차의 천장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들긴다. 안녕 나의 첫 번째 패밀리카. 나의 가족 아닌 진짜 가족.

서효인
시인. 시집『여수』산문집『잘 왔어 우리 딸』제30회 김수영 문학상. 제20회 천상병 시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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