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우리 삶의 총체적 양식을 의미’한다. 각 지역의 자연 환경은 물론 언어와 사고방식, 행동양식, 풍습 등 집단 무의식의 결과다. 일단 형성이 되면 시대적 조건들과 융합되어 그때마다 비약하면서 그 지역의 고유문화를 형성해 간다. 때문에 문화에는 우열이 없고 단지 서로 다를 뿐이다. 이렇게 이질적인 문화권들이 빈번한 접촉을 통해 대립하다가 결국 보편적 체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반발에 의해 오히려 각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이렇듯 문화의 발전은 역사성을 지니며 그 중심에는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의지가 살아 있다.”
대표적인 역사문화학자이자 수학자인 김용운 교수가 최근에 펴낸 저서 「역사의 역습」에서 강조한 주제다.
‘엔진’이라는 희한한 기계를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자동차(Automobile)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이 불과 130년 전이다. 자동차가 우리 삶과 사회 전반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에 비해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자동차는 초기에 귀족들의 값비싸고 신기한 오락물에 불과했지만, 20세기 들어 대량 생산을 통해 대중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현대 산업문명의 총아로 본격 발전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각국의 고유한 지형과 기후, 도로조건, 운행방식 등에 맞추어 서로 다른 특성과 모양으로 진화해왔다.
자동차는 자동차산업이 가진 막대한 영향력과 파급 효과에 의해 다른 어떤 제조 산업보다 나라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전통 민속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가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를 볼 때 논리적이고 정확한 독일 이미지를 느끼고, 재규어와 롤스로이스를 통해 우아하고 절제된 화려함의 영국 귀족문화를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순히 외관만이 아니라 내부 설계와 주행 성능도 그 나라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발전해왔다. 도로에 밀착하며 안정감 있는 고속주행과 큰 트렁크를 자랑하는 독일차는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과 독일 사람들의 장거리 주행 습관에 맞춘 결과다.
독일차는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과 독일 사람들의 장거리 주행 습관에 맞춘 결과다
상대적으로 고속 주행에서는 밀리지만, 프랑스 도심의 돌길과 시골 흙길을 달려 보면 왜 가벼운 차체와 나긋나긋한 승차감을 가진 프랑스차가 좋은 지 알 수 있다. 이렇듯 자동차 선진국들은 자국에 최적화된 자동차가 ‘최고’라는 믿음을 굳건히 지켜 왔다.
1970년대 세계 경제를 흔든 오일 쇼크(Oil Shock)는 자동차산업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1960년대부터 경제부흥을 위해 주력 수출상품으로 자동차를 밀어붙인 일본이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디자인은 평범하지만 뛰어난 품질과 연비를 앞세운 일본의 소형차들이 미국시장을 신속하게 잠식해 갔다. 반면 연비가 나쁜 대형차만 만들고 있던 유럽의 톱 3은 크게 흔들렸고 자국 중심의 스펙과 특성에 머물러 있던 유럽의 소형차들도 미국시장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타깃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동차를 개발해 대량 수출하는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급속한 발전도 글로벌화라는 새로운 흐름을 잘 탔기 때문이다. 유럽 자동차업계도 1990년대 이후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글로벌화에 나서게 됐다.
하지만 해외시장의 특성에 따라 개발하면서 자동차들은 보편성이 강해졌다.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나 차량 고유의 특성이 무뎌진 것이다. 이것은 최근 글로벌화 된 세계 자동차업계의 가장 큰 고민이다.
여기에 전자부품에 의한 자동제어와 함께 원가, 친환경 등 엄격한 제약 속에 효율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면서 자동차의 엔진 특성과 주행 느낌도 비슷해지고 있다. 운전 중 엔진 소리와 배기음에 가슴이 뛰고 흥분되는 짜릿함도 사라지고 있다. 즉 자동차가 점차 지루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브랜드 간 경쟁은 디자인 차별화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디자인도 공기역학이나 첨단소재의 미래스타일을 강조하다 보니 아름다워 보이지만 운전하는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매력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향후 전기차나 자율주행차가 더욱 활성화되면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동차 종류나 세그먼트, 그리고 트림별 특성은 아직 견고하게 남아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자동차문화의 선진화를 말할 때 교통질서나 운전자에 대한 배려 등을 먼저 이야기하지만 각기 다른 자동차의 종류와 특성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 선진 자동차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도 자동차 대중화의 역사가 30년이 넘었다. 교통 인프라 개선과 함께 교통질서와 배려는 이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진한 부분이 바로 자동차의 종류와 특성에 맞춘 운전 행태다.
모든 브랜드에서 자동차를 개발할 때, 엔지니어들은 타깃층의 니즈와 사용환경에 따라 제한 범위를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차량을 개발한다. 모든 운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만능 자동차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자기 차의 콘셉트와 특성에 맞는 운전을 해야 자동차의 참맛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서는 빗길 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앞차를 추월해 가는 경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안전을 위해 구입한다는 SUV에는 네바퀴굴림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SUV는 무게 중심이 높아 급격한 움직임에 따른 위험성이 높아 네바퀴굴림 차량이 더 안전하다. 하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SUV지만 두바퀴굴림 차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 만큼 두바퀴굴림 SUV는 주의해서 운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1톤 트럭의 적재함에 바닥을 덧대어 과적하고 다니면서도 엔진이 힘없다고 불평하는 운전자들도 여전히 많다.
비록 저가의 자동차라 할지라도 콘셉트와 특성에 맞게 운전을 하면 자동차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그것이 자기 자동차에 대한 에티켓이다. 또한 자신의 자동차를 주행하면서 도로 위의 갖은 위험으로부터 탑승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운전 에티켓도 중요하다. 앞으로 자기 자동차에 대한 에티켓에 좀 더 신경써보자. 정기적으로 차를 점검하고 세차까지 해주면 자동차는 더 행복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