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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VOL.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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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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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에세이
자동차와 예술이 만드는 발칙한 협주곡

자동차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예술이라는 세계의 틈새를 열었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와 자동차 기자로 자동차와 예술의 혼종지대를 취재하면서 여러 차례 느꼈던 점이다. 1975년 시작된 BMW의 아트카 프로젝트에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데이빗 호크니, 프랭크 스텔라, 올라푸어 엘리아손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다. 자동차가 예술적 영감을 일으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자동차 컬러는 거리마다 예술적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개성 시대를 열었다. 컬러는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첫 눈에 본 자동차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유혹의 컬러’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자동차는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타인과 차별되는 가치’가 중요해졌다. 페라리는 이탈리안 레드(Italian Red)로 불리는 짙은 붉은색으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동차 도장기술이 최고조로 발전하면서 예술적 색감을 입은 자동차가 속속 등장했다. 최고급 수제 승용차 롤스로이스는 아무리 돈이 있어도 사회적 품격 등 자격이 안 되면 살 수 없는 차로 유명했다. 격조 높은 롤스로이스가 노란색이라니. 1958년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패션쇼에서 미니스커트를 선보인 것만큼 파격이 아니었을까. 노란색 롤스로이스는 여권 신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는 검은색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면서 세상을 바꿔놓았다.

세계적인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가 쭉쭉 뻗는 고음을 내면 오페라 극장의 유리창에 금이 갔다고 한다. 곧이들리지 않는 얘기지만 노란 롤스로이스도 검은색이 지배하는 칙칙한 자동차 컬러 시대에 금을 냈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마블 영화를 통해 자동차의 매력을 전달하는데 앞을 다투고 있다. 1950∼1960년대에도 자동차의 컬러 혁명이 영화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다. 1964년에 만들어진 영화 ‘노란 롤스로이스’는 자동차가 주인공이다. 잉그리드 버그만, 알랑 들롱, 오마 샤리프, 잔느 모로 등 화려한 배역진을 자랑한다. 이 영화를 예전에 ‘TV명화극장’에서 보고 명차를 소유한 채 술과 장미의 나날을 보내는 매혹적인 현실도피를 꿈꿨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는 명차인 노란색 롤스로이스가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치면서 운명이 바뀌는 얘기다. 영화는 차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여주며 노란 롤스로이스 특유의 컬러 미학을 담아냈다.

기품 넘치는 잔느 모로가 롤스로이스에서 내릴 때 남편인 렉스 해리슨이 손을 잡는 영화 스틸 사진은 그 자체로 명작이다. 렉스 해리슨이 놀란 표정으로 자기가 사준 롤스로이스 차 안에서 부인이 놈팡이와 놀아나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하다. 렉스는 그 차를 팔아버리고 이 차는 갱 멤버에게 넘어간다.

일탈과 욕망의 코드가 된 이 차는 백만장자인 잉그리드 버그먼의 품에 안긴다. 전쟁 중이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롤스로이스를 타려는 순간 오마 샤리프가 나타나 트렁크에 자기를 태워서 국경을 넘어가 달라고 부탁한다. 오마 샤리프는 레지스탕스였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아랍인으로 등장하는 오마 샤리프는 실제로도 아랍어에 능통한 배우였다. ‘아라비아 로렌스’의 실제 인물인 모험가 T.E 로렌스는 아라비아 정치에서 소외되자 사막에서 미친 듯 스포츠카를 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인물이다. 로렌스가 아라비아인들을 데리고 파리 박람회에 참석했던 얘기도 재미있다. 로렌스가 아라비아인들을 인솔해 다시 아랍으로 돌아가는 날 그들은 호텔 욕조의 수도꼭지를 떼어내고 있었다. 귀국해서도 시원하게 샤워를 즐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라비아의 석유가 수도꼭지처럼 많은 주유 밸브를 통해 자동차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노란 롤스로이스’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뒤 1971년에는 차가 아니라 말이 주인공인 영화 ‘달려라 블랙 뷰티’가 만들어졌다.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말이 운명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고속 성장 가도를 질주한다. 화려한 자동차가 대거 등장했고 그 가운데서도 눈길을 끈 것이 캐딜락 엘도라도다. 디자이너 할리 얼이 전투기 날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한 캐딜락의 테일 핀이 공기를 가르면 차에 탄 사람들은 신분이 상승한 것 같은 우쭐한 기분을 갖기 마련이었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하인 취급하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1959년 영화 ‘핑크 캐딜락’에 출연한 엘도라도의 테일 핀은 당대 최대 크기였다. 영화의 인기로 이 차는 ‘핑크 캐디’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표적인 실패작 중 하나인 영화 ‘핑크 캐딜락’(1989년)도 캐딜락을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스토리다. 어느 외국 신문은 영화상영시간에 빗대 “122분짜리 수면제”라고 혹평했다. 영화에는 1959년에 나온 캐딜락 드빌 컨버터블이 캐스팅됐다. 1950년대 미국에서 핑크 캐딜락은 노동자들 성취감의 표현이었고, 성공의 상징이었다.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우리시대 모차르트로 꼽는 현대음악작곡가가 필립 글래스다. 그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출판사:프란츠)을 보면 음악대학을 다니기 위해 1958년 공장 아르바이트를 할 때 베들레헴 철강 공장의 주차장에는 대형 캐딜락이 놀랄 만큼 많았다고 한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핑크 캐딜락을 자신의 어머니 그래디스에게 선물한 것을 보면 당시 이 차는 분명히 여성들의 로망이었을 것이다. 5,000달러(약 560만 원)로 시작해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한 메리케이의 성공신화를 다룬 책 제목이 ‘핑크 캐딜락의 여인’(출판사: 물푸레)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엘비스는 ‘엘비스 로즈’로 불리게 되는 특이한 핑크색으로 자동차를 칠했다. ‘로큰롤 황제’ 엘비스 인기는 1959년 핑크 캐딜락이 상품으로 정식 출시되는 계기가 됐다. 트럭운전 기사였던 엘비스는 건들거리는 골반댄스와 다리를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는 춤으로 세계 음악계를 휩쓸었다. 엘비스가 처음 구입한 캐딜락은 뉴 캐딜락 프리트우드 시리즈 60였다. 연비는 리터당 3.4km로 말 그대로 기름 먹는 하마였다.

블래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 ‘핑크 팬더’ 시리즈가 나온 것도 핑크 캐딜락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리즈는 온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캐딜락을 얘기하면서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비 내리는 캐딜락’을 빼놓을 수 없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북쪽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 극장-미술관’의 극장과 미술관 사이 작은 정원에 캐딜락이 서 있다. 달리와 그의 부인이자 뮤즈였던 갈라의 마네킹을 태운 캐딜락에 1유로를 넣으면 자동차 안에서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 달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택시를 잡다가 문득 차 안에 비가 내리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했다고 한다. 차 창문을 통해 보면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비를 맞고 있다. 캐딜락에서 고개를 들어 공중을 보면 작은 우산을 쓰고 있는 뒤집어진 배가 보인다. 기발한 상상력이고, 삶의 철학도 심오하다.

얼마 전 영화 속 나오는 자동차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25일 국내 개봉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 톰 크루즈(에단 헌트 역)와 그의 팀원들은 뉴 M5를 비롯해 7시리즈, BMW 모토라드 알 나인 티(R nineT) 스크램블러와 더불어 1986년식 5시리즈를 타고 다니며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펼친다. 알 나인 티 스크램블러는 프랑스 파리 도심 한복판을 질주하는 주요 장면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개봉에 앞서 지난 7월 16일 ‘BMW와 함께 하는 무비 나이트 시사회’에 참석했다. 김태훈 팝칼럼니스트는 매년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대해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수직하강의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영화의 특징을 짚었다. 수평이동의 미학이 압축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자동차 액션 장면일 것이다.

영화와 자동차, 자동차와 미술의 조합에서 보듯 이제는 예술이 자동차 문화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모든 측면에서 자동차에 대한 예술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를 깊게 탐구하다 보면 자동차 디자인과 장인들의 철학 그 이면에 숨 쉬고 있는 즐겁고 감동적인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예진수
디지털타임스 선임기자,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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