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사람들이 취미와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과거에는 취미라면 독서를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체계적인 장비가 필요한 산행이나 캠핑은 물론 산악자전거 타기 등과 같이 고도의 숙련과 체력을 필요로 하는 취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으로 수집이나 창작 등과 같은 정착 지향적인 취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취미 활동으로서 수집은 대부분 우표같이 전통적인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꽤 다양해지고 있다. 고가의 카메라나 시계, 혹은 이른바 ‘피규어’ 라고 불리는 정교하게 제작된 인형이나 모형 등 그 범위가 매우 넓어지고 세분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피규어나 모형 등으로 대변되는 완구류 제품이 주목받고 있고 이러한 대상에 관심을 가진 계층을 키덜트(kidult;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이처럼 취미활동에 종사하는 계층이 경제적인 여력을 갖게 되면서 수집활동이 단지 완구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가의 고급제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급제품 수요의 한 분야가 바로 이른바 ‘다이캐스트’라고 불리는 정교한 자동차 모형이다.
다이캐스트는 실제 그 모형의 제작에 쓰인 공법이 다이캐스팅(die-casting)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이캐스팅 공법은 카메라의 몸체나 손목시계 하우징 등을 알루미늄이나 주석 등의 금속 재료로 정교하게 성형하는 주물 공법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공법으로 1:24 혹은 1:18 등의 비율로 모형 자동차의 차체를 성형해서 도색하고, 거기에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바퀴와 유리창 등의 부품을 조립해서 완성시킨 모형을 다이캐스트 모델이라고 지칭한다. 다이캐스트 모형은 금속 재료로 제작된 차체가 주는 중량감과 표면의 도장 광택이 실물 차량과 유사한 감성을 줌에 따라 완구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장점이다.
다이캐스트는 실물 차량과 유사한 감성으로 완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다이캐스트 모델의 시초는 수집가마다 주장이 다르다. 대체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성냥갑 크기의 작고 귀여운 자동차 다이캐스트 완구가 유럽과 일본 등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후 일본에서 1970년대에 1:24 크기의 플라스틱 성형 조립완구 자동차 모형이 등장했고 현재 가장 보편적인 1:18 크기의 알루미늄 다이캐스트 모형은 199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의 부라고(Burago)에서 처음 발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 부라고는 페라리(Ferrari) 차량의 다이캐스트 모형을 생산했으나, 이후 차종과 브랜드를 확대해서 전 세계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마이스토(Maisto) 브랜드 제품도 부라고와 동일하게 1:18 크기로 등장하면서 다이캐스트 모형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부라고와 마이스토의 제품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1:50, 1:64 등의 초소형 다이캐스트 모형이 유아용 완구를 중심으로 시판되는 정도였다.
수집용 모형은 1:24 크기의 완전한 수공예품으로 미국의 프랭클린 민트(Franklin Mint) 등의 업체에서 소수 차량을 1,000달러(약 130만 원) 정도의 고가 제품으로 발매했지만 대중적인 상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라고와 마이스토가 1:18 크기 제품을 1990년대 중반 20~30달러(약 2만2,500원~3만3,8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시판하면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다이캐스트 모형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1995년 비벌리힐스(Beverley Hills) 등의 중심가에 다이캐스트 모형 전문 매장이 문을 여는 등 전문적인 취미생활의 한 분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다이캐스트 자동차 모형은 부라고에서 처음 발매하기 시작한 1:18 크기가 가장 보편적인 크기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1:12, 1:8 등 초대형 모형도 개발되고 있다.
현재 1:64, 1:38, 1:24 등 다양한 크기의 다이캐스트 모형이 시판되고 있다. 주요 브랜드는 이탈리아 부라고(본사 국적 기준), 미국 마이스토, 레벨, 앤슨, 핫휠, ERTL, 미니챔프 등이 있고 독일 CMC, 홍콩 오토아트, 일본 토미카, 타미야, 쿄쇼, 스페인 길로이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브랜드는 모터맥스, 노레브, GT오토, 웰리, 콜렉터클럽, 썬스타, JADA, GMP, BBR, UT모델 등 여러 가지다. 국내에는 ‘지그마리’라는 브랜드가 제네시스와 K9 등을 1:18 제품으로 내놓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들의 국적이 다양해졌지만 실제 제품은 대부분 중국과 태국 등에서 OEM으로 제작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부라고는 이탈리아에서, CMC는 독일에서 생산했지만, 현재는 극히 일부의 초고가 제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고가 제품에 속하는 독일 CMC와 홍콩 오토아트, 한국 지그마리 역시 중국 OEM 제조다. 하지만 품질만 놓고 보면 중국산이라는 특징을 발견하기 어렵다. 각 브랜드마다 철저히 품질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제품의 차이는 저가와 고가 제품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동일한 차종의 다이캐스트 모형도 각 브랜드 별로 추구하는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부라고는 전체적인 차체 비례와 차체 면의 흐름이 실차에 가까운 인상을 주지만 디테일이 조금 부족하다. 반면 마이스토는 디테일은 매우 뛰어난 대신, 차체의 흐름이 미려하지는 않다. 이는 수집가의 관점에서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물론 두 브랜드의 모형을 모두 사면 그만이지만, 항상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진열대. 1,500여 대의 다이캐스트 모델을 모았다
필자는 1990년부터 전문적으로 수집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집한 모형이 약 1,500여 대다. 대부분 1:18 크기고 개중에는 1:12이나 1:6 모델도 있다. 대부분 승용차와 트럭과 탱크, 장갑차, 헬리콥터, 그리고 전투기 까지도 1:18 비율로 모으려고 노력 중이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1:18 크기의 F-14 전투기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전투기 모형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크기다. F-14 전투기를 산 것은 몇 년 전에 보았던 람보르기니 슈퍼카와 전투기의 속도 경쟁 장면을 보고 이런 모형의 조합도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필자는 은퇴할 때까지 3,000대 정도를 모아서 자동차역사 150년을 모형으로 재현한 작은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모형 제작이 취미인 사람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과 아울러, RC 자동차 경주트랙, 자동차를 주제로 한 카페 등을 만들 예정이다.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됐고, 지금은 그것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은퇴한 뒤에도 사람들에게 자동차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작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