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간대(University of Michigan) 캠퍼스 곳곳엔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돼 있다. 학교 교수진과 교직원, 그리고 학내 주차증을 보유한 학생은 전기 충전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6월부터 캠퍼스를 오가는 셔틀버스는 프랑스 자동차업체 나브야(Navya)가 만든 자율주행 전기차다. 학교 곳곳에 이미 전기차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미시간대 전기공학컴퓨터사이언스 학과에선 학생들이 전기차와 관련된 연구가 한창이다. 전기차와 관련된 전력부터 임베디드 컨트롤시스템과 인프라스트럭처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 곧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미국 미시간대 캠퍼스를 오가는 자율주행 전기차
중국 베이징 길거리에선 소리없이 굴러가는 전기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베이징 시내 안에 테슬라 매장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많은 6개나 된다. 중국 전기차 업체 넥스트EV(NextEV)의 니오(NIO)는 테슬라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서 일하는 인재를 스카우트하며 상하이와 베이징 한복판에 대형 쇼룸을 마련했다. 이 업체는 2016년 전기 스포츠카 ‘니오 EP9’로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7분5초12에 주파하며 양산차 코스기록을 경신했다.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BYD)는 테슬라와 함께 전기차 판매량 기준으로 글로벌 톱2 업체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1대당 약 10만 위안(약 1,700만 원)까지 지원하며 강력하게 규제해온 차량 번호판 발급에도 전기차를 살 땐 한층 수월하도록 발급 수량을 넉넉하게 하며 전기차 시장을 지원중이다.
글로벌 빅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에선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전기차를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전세계 전기차 판매는 처음으로 120만 대를 넘어섰고 판매된 모델 가짓수는 약 165개이다. 그 중 중국이 전체 판매의 48%, 미국이 13%를 차지했다. 유럽의 판매 비중은 26%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로스트앤설리반은 2025년에 전기차 판매는 2,500만대 수준까지 성장하며 전체 모델 수는 400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전체 자동차 판매 중 5대 중 1대는 전기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기차 중 가장 돋보이는 업체는 바로 테슬라다. 배터리 등 제조에 높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양산에 소극적이던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낮은 수익성을 ‘멋진’ 자동차 제조를 통해 높은 가격을 받음으로써 그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덕분에 테슬라의 2017년 매출 총이익률은 22.9%로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BMW 그룹의 18.4%(자동차 부문)보다 훨씬 높았다. 2017년 테슬라의 자동차 1대당 판매단가가 9만3,580만 달러(약 1억 원)를 넘었기 때문이다. BMW와 롤스로이스, 미니를 포함한 BMW 그룹은 같은 해 3만6,000유로(약 4,700만 원)를 기록했다. 작년 가을부터 생산한 저가형 전기차 모델 3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면 그 금액이 다소 줄겠지만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다. 2017년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 중 절반이 테슬라(약 5만 대)였으며, 테슬라의 전체 매출 중 중국에서의 매출이 21%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과 중국에서 이 회사의 선전은 대단하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 인프라 구축에 점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테슬라 경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시장이 우려하고 있지만 테슬라 위상은 전기차 시장에서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만큼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렉서스가 출시된 1989년 이후 탄생한 자동차 브랜드 중 글로벌 브랜드 런칭에 성공한 유일한 자동차 브랜드다. 헤리티지가 중요한 자동차 업계에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전기차의 성공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와 함께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5위 현대차가 보유한 제네시스는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고 브랜드로 런칭을 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국내가 아닌 전세계 시장에서의 성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그만큼 자동차 시장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은 어렵다. 새로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역사와 전통이 깊은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엔 오히려 지름길일 수 있다. 하지만 테슬라는 제대로 된 차를 내놓은 지 고작 10여 년 만에 그 일을 해냈다. 소비자들에게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개척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시장 준비에 점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양산에 가장 문제였던 배터리 가격이 2016년 킬로와트당 300달러에서 2020년이면 100달러로 약 1/3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톱3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 양산 계획은 상당히 공격적이다. GM은 2023년까지 총 18개의 전기차 모델을 내놓고 2026년까지 10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토요타의 계획은 그보다 더 앞선다. 2020년까지 10개 이상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고 2025년까지 100만 대를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세 업체 중 폭스바겐의 계획이 가장 공격적이다. 2025년까지 80개의 전기차 모델을 내놓고 2025년까지 200만~30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017년 테슬라의 순부채가 80억9,600만 달러(약 8조 원)를 넘어 언론에선 이 회사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재무구조가 안 좋다고 끊임없이 보도한다. 하지만 작년 판매(10만3,000대)의 5배가 넘는 50만 명 이상이 보증금을 내고 모델 3의 생산을 기다리는 것을 보면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는 결코 낮지 않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1%정도 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한국은 좀 더 분발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