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기업평균연비제도(CAFE)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백악관에 보고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를 공식화했다. 미국의 연비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CAFE의 중간점검은 4월에 실시하기 했었지만, 오바마 정부가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를 앞당겨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작년 1월에 실시하면서 규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미국 환경보호청은 이를 다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자동차업계에 부담을 주는 기업평균연비제도의 완화를 거듭 밝혀왔다. 아직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현행 규제보다 크게 완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기업평균연비제도 강화의 기반이 되었던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탈퇴할 것을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규제완화가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부 주의 반대와 독자적인 규제로 효과가 크지 못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미국 자동차업계는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 규제는 1만대 이상 판매한 자동차 제조사를 대상으로 규제에 미달하는 경우 0.1mpg당(자동차 1대 기준) 14달러씩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어있다. 이번 규제완화는 기업의 부담을 줄여 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실제 빅3로 대표되는 미국 자동차업체는 최근 에너지 효율성은 좋지만 이익이 남지 않는 소형차를 단종하면서 규제완화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형차 생산기지인 한국GM의 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GM은 준중형 크루즈를 생산하던 한국 군산공장 폐쇄에 이어 미국 오하이오 로즈타운 크루즈 공장의 생산 및 인력 감축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디트로이트공장에서 소형차 쉐보레 소닉(한국명 아베오)의 생산을 중단하고, 창원공장에서도 스파크의 단종을 추진하고 있다. 포드도 소형 피에스타를 단종하고, 퓨전도 생산지속 여부를 검토 중이다. 크라이슬러도 200세단과 소형차 다트의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이러한 미국업체들의 소형차 단종에는 기업평균 연비규제의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2016년만 하더라도 미국에 자동차를 판매하는 기업들의 연비기준 달성 여부를 보면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90%로 가장 낮은 수준이고, GM과 포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반면, 토요타와 혼다, 닛산, 스바루, 마쯔다, 현대 등 일본과 한국기업은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결국 현재 연비규제가 지속된다면 미국업체는 과징금 등으로 인해 경쟁력이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것이다. 중국보다 낮은 규제수준으로 ‘공해발생국’이라는 오명보다는 자국 기업 보호라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자동차 소비구조가 대형차 위주라는 특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설정한 2025년까지의 업체당 연비규제목표가 23.2km/L로 한국의 2020년 목표인 24.3km/L에 미치지 못한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해도 17.7km/L로 한국이나 EU의 기준에 크게 떨어지며 중국의 20km/L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환경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EU만 하더라도 2020년까지 기업 당 평균온실가스배출기준을 95g/km로 설정하였지만 달성이 어려워지자 이를 2021년으로 연장하였다. 이러한 환경규제에 대해 기업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조치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인 문제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이와 관련해 소홀히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전반에 걸쳐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 억제 노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미국의 자동차시장은 1700만~1800만 대 수준으로 세계 전체의 20%에 육박한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시장이다. 따라서 미국시장 자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미국의 변화에 따른 세계 시장 전체의 변화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국시장에서는 중·소형이나 연비 좋은 차로 승부했다면 향후에는 고급화, 대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친환경화 경향은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라 친환경분야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노르웨이나 네덜란드 등과 같이 자동차산업이 미미한 지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자동차산업이 중요한 국가까지 공해를 발생시키는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방안이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규제 논의로 인해 최근 친환경차에 대한 전망이 낙관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연비규제를 강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조금 정책과 더불어 친환경자동차보급 의무 제도를 도입하는 등 친환경자동차 보급정책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연비규제 완화 논의로 자동차시장은 보다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동차를 판매하는 국내 업체로서는 이러한 시장 환경에 모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다른 여타 정책적 목표보다 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적인 온난화문제와 국내 미세먼지 등의 환경 문제를 고려하면 우리가 이러한 정책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환경문제 개선과 더불어 국내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 규제 정책에 있어 환경개선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기업에 부담을 주거나 효율적인 선택을 제약하는 요인이 없는지 살펴봐야할 것이다. 더불어 환경정책 수립할 때 환경관련 관계자뿐만 아니라 자동차업계 의견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