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열린 글로벌 모터쇼를 지배해온 미래지향적 트렌드는 최근의 제67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한층 증폭되었다. 20세기 이래 모터쇼가 미래를 보여주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최근의 모터쇼들에서는 이전까지와 사뭇 달라진 미래 제시와 방향설정을 찾아볼 수 있다.
과거의 모터쇼가 그려냈던 미래의 모습은 마치 꿈처럼 환상적이었다. 굳이 자동차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드림’이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고도 남음직했다. 하지만, 최근의 모터쇼에서 ‘꿈’과 ‘환상’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풍성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낭만적 미래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당장 눈앞에 닥쳐온 ‘현실적 공상과학’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는 말과 ‘공상’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는 않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게 지금 자동차업계 환경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상상력은 제아무리 화려하고 근사할지라도 허용하지 않는다. 끝을 모른 채 치닫는 혹독한 경쟁 속에서 현실화 계획이 없는 상상력은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실에만 갇혀있으라는 메시지는 절대 아니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으되, 경쟁자들보다 단 반걸음이라도 앞서 신기술을 내놓아야 한다. 그 같은 경쟁의 결과물이 다양한 전기자동차이고 컴퓨터화된 첨단기술이며 자율주행기술이다.
머지않아 현실로 닥칠 ‘임박한 미래기술’ 경쟁은 자동차업계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한때 마케팅 필수용어처럼 여겨졌던 ‘친환경’은 이미 선언적인 수준을 넘어 브랜드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기자동차는 현실을 달리고 있고, 자율주행기술도 하나둘 양산차에 적용되고 있다. 기술적인 면만이 아니다. 제조사들과 시장 간의 소통방식도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마케팅에서도 변화의 시기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차내 커넥티드 시스템은 새로운 마케팅 기회가 된다
흔히 자동차 마케팅이라고 하면, 다양한 형태의 ‘광고’나 모터쇼 및 신차출시 같은 ‘이벤트’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마케팅 활동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동차회사의 마케팅은 R&D센터를 빠져나온 제품이 고객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까지의 과정에 관여하는 크고 작은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구중궁궐 같은 R&D센터 깊숙한 곳에서 다듬어낸 신기술, 혹은 새로운 컨셉트가 과연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을지 판단하고 그에 걸맞은 가치를 부여하는 건 마케팅 활동의 첫걸음이다.
여행을 테마로 한 시승 이벤트
시장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컨셉트를 잡고, 상품구성을 하며 그에 따라 트림을 나누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마케팅의 몫이다. 가격과 판매목표, 그리고 시장에 어필할 세일즈 포인트까지 정리를 하고 나면 바통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즉 고객들과 직접 만나는 단계로 넘어간다.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바로 그 단계다. 여기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한 광고와 크고 작은 이벤트, 시장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모든 적극적인 활동들이 이뤄진다. 자동차회사의 마케팅은 한마디로, ‘자동차와 시장의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부서인 만큼 자동차 자체의 변화는 마케팅 활동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케팅은 이미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자동차의 위상과 이미지, 역할에 크나큰 변화가 일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다. 기술개발 및 이를 시장에 전달하는 매체(온라인과 SNS 등)의 발달로 인해 자동차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각은 하루가 다르게 상향 평준화하고 있다.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지만, 어설픈 소통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한시가 급하다고 하지만, 제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마케팅은 되레 악영향만 미칠 뿐이다. 소비자들과 같은 환경에 발 디디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한발 앞선 곳을 바라봐야 하는 마케터의 숙명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수준 높은 변혁기’는 버거운 도전이자 가슴 벅찬 꿈의 무대다.
우리나라의 통산 자동차 등록 대수는 이미 2천200만 대를 넘어섰다. 세계 열다섯 번째다. 한 가구당 한 대꼴로 자동차가 보급되어있는 셈이다. 이만큼의 신차가 매년 팔리는 중국이나 미국 시장과는 규모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지만, 질과 양 모든 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경기에도 불구하고, 매년 150만 대(승용 기준) 정도씩 꾸준히 팔려나가는 시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변화’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팔린 승용 목적의 신차(상용 제외)는 156만8천658대였다. D-세그먼트, 즉 중형시장이 49만3천 대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고, 그 뒤를 C-세그먼트(준중형)가 이었다. 올해 8월 말까지 국내 승용시장 규모는 101만여 대다. 이를 토대로 올해 연말까지의 판매 대수를 추산해보면 152만 대 정도가 나온다. 대략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다. 중형은 여전히 가장 큰 규모로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지난해와 달리 준중형이 살짝 주춤하는 사이 E-세그먼트(대형)가 지난해 대비 20% 이상 성장하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추세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늘 약세를 면치 못하던 B-세그먼트(소형) 시장도 올해 들어서는 소형 SUV를 중심으로 오랜만에 기운을 내고 있다. 외형 규모만 놓고 보면 올해 우리나라 시장은 지난해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지만, 속내는 이렇듯 부지런히 변화하는 중이다.
소비자들은 소형 SUV 시장이 모든 국산차 브랜드들의 각축장으로 확대되리라고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 같지 않던 중형세단 시장이 다시 힘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소비자들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선이탈경보장치나 어드밴스드 크루즈컨트롤과 같은 기본적 자율주행기술이 신차 선택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는 날이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최근 들어 ‘상향 평준화’와 ‘더욱 뚜렷한 양극화’ 현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소형에서부터 대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그먼트에 걸쳐 고급화와 첨단화가 이뤄진다. 자동차회사들은 소비자들을 자극하고, 소비자들은 더 높은 기준을 원하며, 자동차회사들은 다시 그보다 앞선 첨단기술을 집어넣는 무한 루프가 반복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위 고급브랜드들은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깜짝쇼 수준의 사양을 과시한다(이들 사양이 얼마 뒤 아랫급으로 확산하는 ‘첨단장비의 순환’이 또다시 반복된다).
낯선 개념과 낯선 장비의 경쟁이 반복되면서 자동차회사의 마케팅은 점차 '설명(Explain)'에서 ‘체험(Experience)’으로 옮겨가고 있다. 요즘 소비자들의 신기술 습득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SNS에는 ‘재야의 전문가’들이 수두룩하고, 이들은 일방적 설명만 듣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소비자들이 신기술에 감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직접 만져보고 써보고 나서 엔지니어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내 따끔하게 지적한다. 자동차회사 마케팅의 영역은 이제 이런 부분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만 한다.
고객과 직접 만나는 체험 마케팅이 늘고 있다
20세기 초 GM 왕국을 건설했던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이 주창했던 ‘고의적 진부화’는, 21세기에 접어든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숨 돌릴 겨를 없이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움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마케터들은 시장의 두려움을 기대로 바꿔놓을 ‘확신’을 전달해야 한다. 확신은 체험을 통해 공고해진다. 마케팅의 무한도전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