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은 세일즈 마케팅 전문가 박동훈 사장이 경영진에 합류한 이후 내수시장에서 현대·기아차나 한국지엠 등이 간과해 온 틈새시장을 공략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정면대결로는 신차 개발이나 생산능력, 판매망 등에서 앞선 현대·기아차 등을 상대로 버틸 수 없지만 틈을 찾아 전력을 집중하면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르노삼성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디젤 중형 세단 등에 이어 이번에는 가솔린 중형 SUV를 새 타깃으로 들고 나왔다.
그동안 힘과 연비를 중시한 국내 SUV 시장에서는 ‘SUV=디젤차’라는 고정관념이 널리 통용됐다. 하지만 SUV의 주 무대가 험로에서 도심으로 바뀌고 유가까지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수입차시장을 중심으로 가솔린차 바람이 거세졌다. 지난해 중형 SUV QM6를 성공적으로 선보인 르노삼성은 이같은 흐름에 착안해 9월 QM6의 기본기에 가솔린 엔진의 정숙성을 더한 ‘QM6 GDe’를 내놓았다. 출발은 성공적이다. 출시 후 13일(영업일 기준) 만에 계약대수 1000대를 돌파했다.
르노삼성 QM6 GDe
9월 7일 인천 연수구 경원재 앰배서더에서 만난 QM6 GDe의 겉모습은 기존 QM6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큼지막한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에 르노삼성 태풍의 눈 엠블럼이 크게 자리잡고 양옆으로는 각진 C자 모양 발광다이오드(LED) 램프가 그릴을 감싸안았다. QM6 GDe를 포함한 2018년형 QM6는 안개등에도 LED가 적용돼 야간 및 악천후 시 시야 확보가 용이해졌다. 또 RE트림 이상에서는 보라색을 품은 아메시스트 블랙 색상이 추가됐다.
실내는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럽다. 수평으로 배치된 대시보드에 이어 센터페시아에 세로로 길게 자리 잡은 8.7인치 대화면 S링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눈에 들어온다. SM6에 이어 QM6까지 적용된 S링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내비게이션, 음악은 물론 공조장치 조절 등 차량 기능도 모니터를 통해 터치 방식으로 간단히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터치 방식을 처음 접하는 이나 아직 익숙치 않은 운전자들의 경우 기존 다이얼 및 버튼 조작 방식에 비해 살짝 답답할 수 있다. 중형 SUV 가운데 가장 넓은 뒷좌석 무릎 공간을 제공하는 등 실내공간은 넓은 편이지만 뒷좌석의 경우 등받이 각도 조절이 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이밖에 기존 QM6에 비해 앞좌석 컵홀더 디자인이 변경됐고 트렁크 공간 활용도도 커졌다.
QM6 GDe 실내
차량 내·외부를 훑어본 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정지 상태에서는 엔진 소음과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나도 몰래 제대로 시동이 걸렸는지 계기판을 다시 쳐다봤다. QM6 GDe는 최고출력 144마력, 최대토크 20.4㎏·m의 2.0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 일본 자트코사의 무단변속기(CVT)를 탑재했다. 초반 도심 구간에서는 부드러운 주행감이 돋보였다. 기존 디젤 모델에 비해 120㎏ 가량 가벼운 탓에 몸놀림이 가볍다. 송도 도심을 빠져 나와 편도 17㎞에 달하는 인천대교 구간에서 가속페달에 힘을 주자 속도계 바늘이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엔진 제원에서 알 수 있듯 차는 톡톡 튀는 순발력이나 예상을 뛰어넘는 경쾌한 가속성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 박자 정도 여유를 갖고 발끝에 힘을 주면 차량 속도를 운전자가 원하는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올려놓는 모습이었다.
GDe 2.0 가솔린 엔진
QM6 GDe의 두드러진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정숙성이었다. 가솔린 SUV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흡·차음재를 대폭 적용했다는 설명처럼 신호대기 등으로 멈춰 섰을 때는 물론이고 중고속으로 내달릴 때도 실내에서는 별다른 소음을 포착하기 어려웠다. 르노삼성 측이 배경음악으로 준비해 놓은 클래식 음악 선율이 자연스레 귓전을 간질였다. QM6 디젤 모델을 처음 경험했을 때와 달리 QM6 GDe는 차량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노면 소음도 잘 걸러냈다. 일부러 급가속을 시도하자 그제야 엔진이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그마저도 나즈막한 소리였다.
전통적으로 핸들링을 중시하는 르노 차량답게 핸들링 성능과 차체 안정감은 꽤나 훌륭한 수준이다.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급코너길에 들어서 스티어링 휠(운전대)을 잡아 돌려도 차체 뒷부분이 어렵지 않게 따라 붙으며 원하는 대로 돌아나갔다. 직선 주행에서는 한동안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도 차선을 유지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QM6 GDe를 내놓으며 서스펜션을 새로 다듬은 덕인지 승차감 역시 합격점을 줄 만 했다. 내쳐 달릴 때는 탄탄한 느낌으로 차체를 지탱해주면서도 과속방지턱과 같은 장애물을 타고 넘을 때는 운전자나 탑승객이 불쾌감을 느낄 만한 충격을 잘 걸러냈다.
QM6 GDe 주행 모습
가솔린 SUV의 대표적 약점으로 꼽히는 낮은 연료효율 역시 QM6 GDe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햇살이 유난히 강한 날씨 탓에 줄곧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왕복 105㎞를 달리고 확인한 실연비는 ℓ당 12.2㎞로 ℓ당 11.7㎞(17·18인치 휠 기준)인 공인연비를 웃돌았다.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큰 힘을 발휘하도록 세팅된 데다 연비에 강점이 있는 CVT를 탑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르노삼성이 QM6 GDe를 출시하며 내놓은 또 하나 비장의 무기는 가격이다. QM6 GDe의 국내 판매가격은 디젤 모델 대비 290만 원 낮은 2480만~2850만 원대로 책정됐다. 통상 가솔린 모델이 같은 차종의 디젤 모델에 비해 엔진 가격 등을 감안해 150만 원 가량 가격이 싼 것과 비교할 때 가격적인 메리트가 극대화됐다는 평가다.
QM6 GDe는 넘치는 출력과 토크를 발휘하며 험로를 내달리는 정통 SUV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차다. 하지만 널찍한 실내공간에 가족들을 태운 채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에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목적지로 이동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디젤 모델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연비 역시 저렴한 차값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 중형 가솔린 SUV라는 르노삼성의 새로운 틈새 공략 작전은 이번에도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