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동차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과 함께 급속도로 다가온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몇 해 전부터 이미 자동차 세계에도 들어와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증강현실에 가까운 대표적 예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다. 현재의 HUD는 주행 속도나 내비게이션 안내 등 운전 정보와 재생중인 음악 등 인포테인먼트 정보를 운전자의 시야에 투사하는데, 이 정보가 도로나 차선 등 실제 환경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마치 차량의 몇 미터 앞에 정보가 표시되는 효과를 제공하므로 제한적이나마 증강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2009년 유럽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애프터마켓 제품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주행할 차선과 교차로에서의 선회 방향 등을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내장하거나 별도로 장착된 카메라로 진행 방향 도로를 촬영하여 그 위에 중첩(overlay)시키는 진일보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화상의 표시가 차량에 내장되거나 대시보드 위에 설치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화면에만 표시되므로 이 역시 제한적 증강현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가상현실의 경우는 소비자 대상 기술보다는 자동차 제작사를 위한 기술들이 더 발달되어 있다. 소비자 대상의 대표적인 가상현실 기술은 가상 컨피규레이터(configurator)다. 가상 컨피규레이터는 전시장 또는 가정의 컴퓨터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양과 색상으로 차량을 만들어 가상현실에서 미리 만나보는 시뮬레이션 기술로서 현재는 제한된 화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상현실용 헤드셋을 통해 구현하는 데는 기술적인 문제가 거의 없다. 또한 현재는 전시장의 컨피규레이션 룸에서 옵션형 내장재나 컬러 칩을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가상현실 내의 차량이 변경되는 등 RF ID 기술이 이미 상용화되었다. 그러나 안전한 주행이 가장 중요한 자동차의 특성상 현실을 대체하는 가상현실 기술이 차량에 직접 적용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상현실 기법으로 조립 공정의 무결성을 확인하는 과정(솔리드웍스 월드 2017에서 직접 촬영)
그 대신 가상현실 기술은 자동차의 설계와 시험 등 자동차 제작 단계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제는 컴퓨터가 없이는 불가능한 설계, 즉 CAD는 실제 시제품을 만들지 않고도 성능을 시험하고 설계의 무결성을 시뮬레이션으로만 거의 완벽하게 검증할 수 있는 수준의 CAE (Computer Aided Engineering)로 연결되었다. 이전에는 거대한 풍동 시험실이 반드시 필요했던 공기 역학 시험도 이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부분 대체되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시험들이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되거나 진행중이다.
또한 차량의 생산 공정 효율화를 위해 생산라인의 배치 및 각 부품의 조립 방향 및 순서 등을 시뮬레이션하는 공정 시뮬레이션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물론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갖고 있는 거대기업들은 이전부터 이런 시도를 많이 해 왔으나 최근 중소기업 단위에서도 부품의 설계와 엔지니어링 단계에서 가상현실을 통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도록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 등이 이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고 있다.
따라서 가상현실보다는 증강현실(AR)이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야기했던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으로부터 시작된 AR 시스템이 자동차의 시스템으로 통합되는 움직임이 이미 지난 2017 CES를 통해 선보였던 것이다. 이제는 삼성의 계열사가 된 하만(Harman)은 LIVS 시스템을 통하여 내비게이션뿐 아니라 차량의 각종 센서를 통하여 수집한 정보를 대형 화면에 증강현실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시연하였다.
독일의 컨티넨털(Continental)은 이와 유사한 정보를 대형 고해상도 HUD를 통해 운전자의 시야에 직접 투사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계기반 전문 브랜드인 비스테온(Visteon) 역시 HUD를 통한 차량 센서 통합 디스플레이 AR 테크놀로지를 선보였는데 주변에서 감지된 물체의 종류나 주목도에 따라서 색상을 덧입히는 형태로 운전자에게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독일 콘티넨털의 고해상도 증강 현실 HUD (출처 – 컨티넨털)
위의 HUD형 증강현실 통합 정보 시스템은 이미 기술적으로는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 하는 인간 측면에서의 연구가 더 필요할 따름이다. 또한 인간의 시야를 완벽하게 커버함으로써 극도의 사실감을 이룩한 아이맥스 영화관처럼 운전자의 시각을 완벽하게 망라하는 HUD는 증강 현실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실과 증강 현실 사이의 단절 없이 정보에 대한 몰입도가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행 여건이나 운전자의 용도에 따라 다양한 모드로 변경되는 증강현실은 안전은 물론 달리는 즐거움을 더하여 자동차의 상품성을 향상시킨다. 대표적 예가 오프로드 주행에 특화된 랜드로버의 투명 보닛(transparent bonnet)이다. 산악 오프로드 주행시 오르막 정상에서 내리막으로 전환되는 순간에는 보닛에 가려 전방을 전혀 볼 수 없다. 이때 운전자 시야에 AR로 표시된 전방의 지형 정보를 이용하여 운전자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지형을 돌파할 수 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소비자와 자동차, 혹은 자동차산업의 접점으로 더욱 많이 적용될 전망이다. 판매 네트워크의 유지 관리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현 상황을 대신하기 위하여 물리적 네트워크를 광범위하게 유지하는 대신 가상 쇼룸을 이용하는 것이다. 테슬라는 판매 네트워크의 필요성에 이미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볼보 역시 몇 해 전에 온라인 판매를 선언한 바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다양한 가상 및 증강 현실 체험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존의 판매 네트워크에도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전시장에 구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강 현실과 같은 새로운 도구가 보완할 수 있다. 현대차는 증강 현실 사용자 설명서를 스마트폰 앱으로 제공하여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자동차의 특정 장비로 향하면 증강현실과 함께 설명이 이루어지는 형식이다.
Hyundai Augmented Reality app 증강현실 사용자 설명서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자동차 자체와 자동차산업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자동차와 사람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강화하는 경험으로 새로운 판매 가능성과 매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있다.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차가 증강현실과 만나는 순간 아주 매력적인 판매 촉진 수단이 되는 것이다. 광고, 정보와 함께 바로 그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