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 글이 곧 일상인 나에게 인풋은 독서이거나 영화를 보는 일이고 아웃풋은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이다. 나른하고 무료한 일상을 즐기는 나를 조금쯤 활동적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운전일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그도 아니라면 머릿속이 복잡할 때 운전대를 잡고 무작정 시동을 건다. 해가 지는 시각 자유로에 올라 해가 강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도로의 끝까지 가보는 일. ‘개성’이나 ‘제3땅굴’이라는 이정표가 보일 때마다 낯선 자유로의 끝에 이르러 민통선의 끝에서 잠깐 쉬는 것도 이 코스 중의 하나다. 멀리 임진강을 바라보며 1번국도로 빠져나와 천천히 차를 몰다 보면 어느새 복잡했던 생각들이 방향을 잡고 어둑어둑해진 밤공기와 그에 맞는 음악에 마음을 흠뻑 빼앗기기도 한다. 때로 한편의 시가 떠올라 차를 멈추고 그 문장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은 일상의 동반자, 모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몇 해 전 나는 전국을 오가며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작업은 국내의 원자력발전소와 관련 지역을 답사하며 발로 쓴 탐방기이자 원전을 이해하는 입문서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당시 고성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7번국도 위에 있었다. 고성, 양양, 삼척, 영덕, 울진, 울산, 경주, 부산…, 그렇게 동해를 완주하고 밀양으로, 서해의 영광으로, 대전으로 전국을 오갔더랬다. 그렇게 길 위에서 탄생한 산문집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건 아마 나의 작은 차, 모닝일 것이다. 돌아보면 언제나 나의 길에는 모닝이 함께였고 외진 곳과 오지를 넘나들 때 든든한 발이 되어 주었다.
2009년부터 시작해 벌써 햇수로 9년째 타고 있는 모닝은 나의 첫 차이자, 현재로서는 마지막 차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만큼 내 운전 스타일에 맞게 길이 들었고 부품을 교체하고 관리를 하면서 정도 들었다. 그러나 처음 차를 살 때의 순간을 떠올려보면 내가 이 녀석과 이렇게 친근해지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모닝 주세요. 현금으로 할 게요.”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잠깐 쉬는 중이었던 자동차 대리점의 영업사원은 ‘이게 웬 떡이냐’하는 표정으로 반색했고, 혹여 내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까 이것저것 요구하지도 않은 사은품과 서비스를 얹어 주며 내 환심을 샀다. 그런 과정 끝에 일주일 여를 기다려 파스텔톤의 푸른색 모닝이 집 앞으로 배달되었다. 색상을 파스텔톤으로 정한 건 다름 아닌 때가 타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듯 내가 모닝을 선택한 것에 큰 뜻은 없었다. 차가 필요하기는 한데 비싼 차는 엄두가 안 났다. 경차는 가격대비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다는 장점이 분명했고, 할부나 대출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모아 둔 돈을 탈탈 털어서 살 수 있는 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차는 실용성이지” 하며 경차와 소형차의 견적들을 비교해보다가 모닝으로 마음을 정한 다음에는 단번에 가까운 대리점에 들어가 구입해 버렸다. 마치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듯, 그렇게.
그 이후로 나는 늘 모닝과 함께였다. 약속장소에 갈 때도 미팅이 있을 때도, 장을 보러 나설 때도 모닝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게 9년을 지내오면서 녀석과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말이지 그렇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는데, 하는 일이 자유롭다 보니 전국 단위로 지방을 다니는 경우가 남들에 비해 많은 편이다. 지난해에 맡았던 한 프로젝트도 전국을 돌며 글을 쓰는 작업이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비롯해 부산, 대구, 영주, 순천, 여수, 아산, 전주까지…, 두 달여 만에 전국을 완파했다. 그때 역시 나는 모닝의 운전석에서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었다. 그렇게 원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차에 있던 시간은 하나의 추억이 되고 좋은 기억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사과 수확철이던 가을 과수원 사이로 차를 몰고 가다 예쁜 사과나무 앞에 차를 대 놓고 과수원을 구경했던 영주. 손에 굵은 심줄이 불거져 있던 농부가 웃으며 건넨 사과 두 개를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차 안에 퍼지던 사과 향이 며칠 내내 은은했더랬다. 전주로 내려가던 길엔 고속도로에서 첫눈을 맞았다. 마침 차 안에는 박효신의 ‘눈의 꽃’이 흐르고 있었고 마음은 날씨와 음악이 주는 분위기에 맞춰 충분히 감성적이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원자력발전소 기행에 나섰던 당시를 떠올려 보면 원전이라는 시대의 우울한 상징을 보러 가는 길이었음에도 바다를 따라 이어져 있던 해안도로 위를 달리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삼척에서 울진으로 내려가던 길. 비가 오던 7번국도에서 물웅덩이에 빠져 차가 허우적거렸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을 통해 세상에 나온 다음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싸고 작은 차에 불과했던 사물에 애정이 생기는 과정은 아마 지극히 은밀하고 개인적인 시간이 겹겹이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모닝은 내 인생의 차가 되어있었다. 시나브로, 든든하게.
7번국도
그날 함께 본 일출을 기억하십니까 고성에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우리는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지요 멀리 걸어오는 저 사람의 투명한 윤곽 걷는 자의 쓸쓸함 낭만은 오로지 풍경에만 있을 것 같은 유배의 시간 그곳에 다다랐지요 우리는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습니다 영원을 살아보지 않은 자의 미숙함으로 몇 억 광년일지 모를 시간을 헤아렸습니다 유성우가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습니다 순간의 반짝임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불빛이라고, 당신이 말했습니다
죽은 불빛으로 반짝이는 그곳의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워서 나는 해안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에 마음을 빼앗겼지요 짭조롬한 바람을 머금은 갯완두가 하늘거렸지요
유배된 해안선에서 오래 전의 그리움이 떠오릅니다 당신이 만약 그곳에 있다면 우리가 어떤 오늘을 만들었는지 오랫동안 침묵했던 자의 고독처럼 영원히 잊지 말기로 합시다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 바다를 듣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