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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VOL.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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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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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한국의 자동차 역사 中(기술자립을 향한 격동기)

70-80년대는 자동차 국산화의 시대다. 망치로 두들겨 차를 만들고 해외 메이커와 손을 잡아 국내 조립을 했던 시절을 거쳐 독자 모델 개발 이라는 쉽지 않은 과정을 성공시킨 격동의 시대다.

정부가 8.3조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등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방향과 틀을 제시하면 민간 업체들이 이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는 형태였다. 업체들 간의 무한 경쟁을 막고 효율적인 산업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정부의 규제와 개입은 때론 약이 됐고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70~80년대 격동의 시대는 정부와 업계가 서로 밀고 당기며 산업의 규모를 키우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우뚝 서는 드라마틱한 세월이었다.

정부는 69년 12월 ‘자동차공업육성 기본계획’에 이어 70년 2월 ‘자동차 엔진공장 건설 추진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신진은 당시 합작사였던 토요타와 손잡고 엔진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65년 12월 한일협정 발효 직후인 66년 1월 신진자동차와 손을 잡고 국내에 진입한 토요타는 66년 5월부터 코로나를 CKD로 국내 생산한 이후 크라운, 랜드크루저, 퍼브리카, 트럭, 버스 등으로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었다. 70년에는 토요타와 신진이 50억 원을 투입, 연산 20만대 규모로 엔진공장을 짓는다는 사업계획서를 작성, 정부에 제출한다.

이 때 중국발 복병이 등장한다. 이른바 ‘주사원칙’에 따른 토요타의 한국시장 전격 철수 선언이었다. ‘죽의 장막’ 중국이 시장을 열면서 4개의 원칙을 발표한다. 이른바 주은래의 4가지 원칙이다. 한국과 대만을 돕거나 투자한 회사와는 교역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 큰 시장 중국 진출을 노렸던 토요타는 한국 시장에서의 전격 철수를 선언한다.

토요타의 빈자리에는 GM이 들어왔다. 신진은 GM과 50:50으로 설립한 합작사 ‘지엠코리아’(GMK)로 회사 이름을 바꾼다. GM의 한국진출을 두고 정치적인 의미부여도 있었다.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는 “GM의 한국 진출은 미군 1개 사단의 주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GMK는 72년 6월부터 부평에 엔진공장 건설에 착수, 74년 5월에 완공한다.

정부는 1973년에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을 수립하고 중화학공업정책을 선언한다. 경공업 중심에서 벗어나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그 선도역할을 자동차공업이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차종별 전문 생산체제가 추진됐다. 아세아자동차는 다른 회사로 합병키로 하고 기아산업은 1,000cc급, 현대자동차는 1,300cc급, GMK는 1,400cc급의 모델을 각각 1개씩 전문 양산화하도록 의무화했다.

현대자동차는 고유모델 개발로 일찌감치 방향을 잡았다. 정세영 회장이 독자 모델 개발을 결정하고 정주영 회장의 허가를 받아내면서 본격화됐다. 좁은 한국 시장에서는 승산이 없고, 수출을 위해서는 고유한 독자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현대차는 73년 9월, 이탈디자인과 미쓰비시와의 제휴로 활로를 뚫었다. 디자인은 이탈디자인, 엔진과 변속기는 일본 미쓰비시와 각각 협력관계를 맺고 이탈디자인과 미쓰비시에 직원들을 보내 체계적으로 기술연수를 받고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어렵게 전수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차는 이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힘겹게 개발한 현대차의 첫 독자모델, 포니는 1,238cc의 미쓰비시 새턴엔진이 장착되었고 미쓰비시의 랜서의 섀시를 이용했다. 포니는 74년 10월 30일 개막된 토리노 국제 자동차박람회에 출품된 뒤, 1975년 11월 마침내 포니 1호차가 출시된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로 독자모델의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기아차는 일본 도요고교(동양공업. 현재의 마쓰다)의 패밀리아를 들여와 브리사를 만든다. 74년 10월 17일, 브리사 1호가 탄생했다. 기아차는 브리사를 앞세워 오랜 숙원이던 승용차 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브리사는 75년에 판매량 1만대를 돌파하면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다. 단일 모델로 연간 1만대 판매를 돌파한 것은 69년 신진자동차의 코로나에 이어 두 번째였다.

부평에 국내 최대 규모의 공장을 완공한 GMK는 76년 11월 산업은행이 신진측 출자분을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을 새한자동차로 변경한다. 이후 77년 12월에 제미니를 출시하지만 큰 빛을 보지는 못한다.

1978년 12월부터 79년 3월까지 이란이 석유수출을 중단함으로써 발생한 2차 석유파동은 한국 자동차산업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온다. 정치상황의 급변도 이어졌다.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고 12·12사태, 사북사태, 광주 민주화운동, 신군부의 집권 등으로 이어지는 혼란기를 맞는다. 경기는 위축되고 소비는 줄었다. 79년 사상 최초로 20만대를 돌파했던 자동차 생산량이 80년에는 전년보다 무려 40%나 줄어든 12만 3,000대로 떨어진다.

80년 8월 새로 들어선 전두환 정부는 2·28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를 취한다. 승용차는 현대와 새한으로 이원화하여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기아는 승용차 시장에서 퇴출돼 1∼5톤 트럭과 중소형 버스 전문업체로 사업 영역이 조정됐다.

기아차는 이후 상용차 부문에서 절치부심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뒷문이 슬라이드 방식으로 열리는 소형 버스 ‘봉고’를 만들어 낸 것. 봉고는 큰 히트를 쳤고 봉고 코치 3밴, 봉고 앰블런스, 봉고 코치 6밴, 봉고 코치 9인승 등 제품을 다양화하며 소형 버스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이른바 ‘봉고 신화’로 기아차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74년 4월 미국 AMC와 50:50으로 합작해 설립한 신진지프는 지프형 생산에 전문화된 업체로 75년 코란도 915대를 판매한 이후 77년에 최대1,613대, 79년에 947대 등 판매량이 연간 1천대 안팎에 머물렀다. 신진지프는 79년 3월 AMC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서 신진자동차로, 81년 3월에는 거화자동차로 상호를 각각 바꾸게 되고 84년 11월에는 동아자동차에, 86년에는 다시 쌍용자동차로 인수된다.

80년의 투자조정 조치와 81년의 합리화 조치 이후 산업구조가 크게 변화되고 현대의 북미시장 진출, 대우의 GM 월드카 계획 참여 등이 추진됨으로써 80년대에 들어 제품에서 큰 변화가 나타난다.

현대차 포니는 포니2, 픽업 등의 변형모델들을 출시했다. 83년 7월에는 1.4리터 및 1.6리터 엔진을 장착한 스텔라가 출시되었다. 스텔라는 Y카라는 사업명으로 개발이 추진되어 왔던 것으로 고유모델의 차체에 코티나의 섀시를 기본으로 국산화를 한 모델 후에 한국차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쏘나타로 이어지는 모델이다. 86년 7월에는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1,997cc의 그랜저를 내놓는다.

기아차는 83년 말부터 포드, 마쓰다와 삼각협력을 통해 소형차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 결과물이 프라이드다. 기아차는 자동차합리화 조치가 해제되자 87년 프라이드를 앞세워 승용차 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한다.

대우는 GM의 월드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83년 초부터 GM 월드카로 결정된 서독 오펠의 카데트 개발을 함께 해 86년 7월 르망을 출시한다. 르망은 국내는 물론 서유럽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며 대우차의 전성기를 이끄는 대표 모델로 등극한다.

이 시기에 주목할 부문은 수출이다. 본격적인 자동차 수출은 75년 9월 기아차가 브리사 10대를 중동 카타르에 내보낸 것으로 시작됐다. 현대차는 76년 7월 포니 5대와 대형버스 1대를 에콰도르로 보내면서 수출을 시작했다. 수출규모도 85년에 10만대 선을 넘어선 데 이어 86년에는 무려30만대를 돌파했다.

미국 시장은 현대차가 처음 열었다. 86년 1월 엑셀 1,050대가 울산을 출발해 2월 중순 미국 플로리다 주 잭슨빌 항에 상륙한 것이 첫 미국 수출이다. 엑셀 신화의 시작이다.

엑셀은 판매가 시작되자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다. 4월에 1만 2,282대를 판매하여 월간 판매대수에서 일본 마쓰다를 제치고 수입차시장 7위 업체로 올라섰고, 판매개시 4개월 만에 총 5만 2,396대를 돌파한다. 연말까지는 모두 16만 8천대를 판매한다.

오종훈
오토 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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