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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VOL.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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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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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자동차는 왜
검은색일까
고급 자동차는 왜 검은색일까

검은색은 무난하면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색이다. 특히 연령대별로 차이가 심하다. 젊은 사람들은 젊고 세련된 색으로 생각해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죽음이나 썩은 것을 연상시켜 싫어한다고 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관념뿐 아니라 실제로도 검은색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검은색이 빛을 대부분 흡수하고 반사하는 양이 적기 때문에 사람들의 피부 빛이나 주름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검은색이 사람을 더 늙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검은색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조금 범위를 좁혀 우리 주변의 사물에서 검은색을 찾으면 거의 즉각적으로 고급 자동차나 TV와 같은 물건의 색으로 연결된다. 최신 기술을 탑재한 제품의 색으로 검은색이 자리하는 것이다. 특히 최고급 자동차는 검은색으로 직결된다. 최고급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사람일 텐데, 자동차만큼은 어떤 부정적 연상도 덮어두고 검은색을 최고로 치는 것이다. 이렇게 검은색은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로 통하며 첨단과 힘, 권력의 상징이자 다른 한편 죽음의 색이라는 매우 상반된 이미지로 자리한다. 검은색이 죽음으로 연상되는 것은 인류 역사의 매우 오래된 이야기인데 그러면 어떻게 자동차는 죽음의 색인 검은색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런 선택에는 아무래도 포드 T형의 역할이 크다. 컨베이어 벨트 생산 시스템을 개발해 대량생산의 물꼬를 튼 포드는 그의 혁신에 검은색을 입혔고, 이것이 혁신과 첨단의 색 이미지로 검은색이 자리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포드가 검은색을 도장한 이유는 대량 생산의 효율성을 위해 한 가지 색만 선택한 결과였으며, 생산비를 낮춰 싼값의 차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들을 표준화한 공학적인 구조의 디자인과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으로 대량 생산의 시스템을 고안한 그의 혁신이 검은색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 혁신을 통해 세계는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자동차는 공방에서 한 대씩 제작하던 수공예품에서 공업생산품으로 바뀌었으며, 그 결과 T형은 가격을 1/3으로 대폭 낮추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온 기념비적인 차가 되었고 거의 20년간 디자인 변경 없이 생산되면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부자들의 사치품에서 일반 시민들도 가질 수 있는 일상용품으로 바꾸어 버린 이러한 혁신은 20세기의 문을 활짝 열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다. 물건을 만드는 새로운 접근 방식, 기술적인 조건과 구성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산업디자인이 나타나고 새로운 생활양식이 탄생하고 대중 사회가 열렸다. 이러한 모든 혁신은 흰색, 검은색의 단순한 색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포드의 생각은 기능주의라고 불렸다.

20세기 새로운 물질 환경의 틀을 만들어 가는 기능주의 세계관은 모든 복잡한 것을 배제했다. 장식적인 것, 유기적인 곡선, 화려한 색채는 진보를 향한 행보에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온갖 사치스러운 곡선과 유채색으로 권력을 위해 봉사하던 조형은 대중을 향한 새로운 조형 언어를 준비했다. 신조형의 세계는 점선 면의 기하학적 도형과 무채색으로 조합한 평면적이고 단순한 형태들로 재구성되었다. 섬세하게 다듬은 대리석 조각상으로 뒤덮인 건축물은 철골구조와 콘크리트, 유리로 된 상자 갑 모양으로 단출하게 변했고, 말이 끌던 화려한 치장의 마차 역시 상자 갑 모양으로 단순해졌다.

전기가 발명되고 전기제품이 생산되는 등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발명품이 등장하면서 이것들은 자연스럽게 생산하는 방식, 생산 기계, 신기술로 그 형태의 외곽이 결정되었다. 새로운 발명품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시대에 조형은 기술에 형태 결정의 우선권을 쥐여주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정확하고 규칙적인 기계의 방식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어 기계 미학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검은색은 기계의 색이었다. 복잡하지 않은, 미묘한 감정의 변화나 어떤 개성, 취향도 드러내지 않는, 오직 기술에 몰두하며, 기술이 가져올 기대와 낙관이 가득한 시대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색, 검은색은 첨단 기술과 다름없었다. 세상의 모든 색상들이 섞여야 만들어지듯 검은색은 사람들의 헤아릴 수 없는 희망을 기술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수렴했다.

자동차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의 근대 역사에서 서구 문물의 거대 사물로 선보인 자동차는 검은색의 윤곽이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흐릿한 백의, 풀과 흙의 색, 자연의 빛으로 살아온 우리의 눈에 새까만 검은색은 다른 세상을 암시했다. 서구 문명을 먼저 경험한 지식인들은 백의를 벗고 흑의를 입자며 문명개화의 세상으로 바삐 들어갈 것을 재촉했다. 새로운 문명은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첨단 물건의 색은 검다는 등식이 성립되며, 검은색은 최고급 자동차의 전형적인 색이 되었다. 기술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하는 오늘날, 여전히 검은색은 첨단을 지향하는 사람들, 특히 디자이너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문석
디자인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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