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무덥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한 줄기 희망, 휴가 계획은 모두 세우셨는지요? 많은 분들이 직접 자신의 차를 이용하여 휴가지로 이동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여름 휴가 길의 드라이빙. 여러분은 어떤 음악과 함께 하십니까? 이제 일방적으로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휴가철 음악과 시사 잡담에서 벗어나 스스로 음악의 코디네이터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평소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하는 마니아나 관계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휴가를 맞아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들어와 보는 것도 하나의 역발상적인 일탈이 되겠습니다.
우선, 여름을 표제로 한 음악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대표적으로 비발디의 ‘사계’와 차이콥스키의 ‘사계’가 있는데, 아무래도 비발디 ‘사계’의 ‘여름’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고 그 묘사가 세밀합니다. 이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양식이며,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발디는 시작에서 나른하고 권태로운 여름을 그려냅니다. 1악장에서는 숨 막히게 무더운 듯 짧은 모티브로 시작해 무더운 여름 날씨를 묘사하면서 뻐꾸기 같은 산새의 울음소리를 바이올린 독주로 표현하고, 산들바람을 현의 부드러운 약주로 그려냅니다.
그러나 곧 격렬한 폭풍을 32분 음표의 빠른 패시지로 몰아치며 듣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내립니다. 연결된 2악장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간간이 치며 곧 무엇인가 들이닥칠 것 같은 긴장감을 그려냅니다. 곡의 백미 3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의 트레몰로와 강한 현악 합주가 퍼붓는 비와 폭풍을 묘사하며 공포스러운 여름을 그리고 있지만, 약간의 카오디오 볼륨의 도움을 받는다면 록뮤직 이상의 호쾌함과 전율을 듣는 이에게 선사합니다. 단, 자신도 모르게 범하게 되는 과속 주의...!!
‘수상 음악’이란 뱃놀이를 즐기면서 배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생각만 해도 배경부터 시원한 음악이지요. 더구나 짧은 스무 곡 남짓한 음악들은 당시 유행한 춤곡들을 모아놓은 합주 협주곡의 형태라 듣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고, 현악 외에도 호른이나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와, 플루트 오보에 같은 목관악기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음악의 청량감을 더합니다.
헨델의 ‘수상 음악’은 영국의 왕실 뱃놀이에서 연주되었습니다. 헨델은 바흐와 동갑내기 독일의 작곡가입니다. 당시 하노버에서 게오르그 선제후의 악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헨델은 악장에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 1년의 휴가를 얻어 런던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헨델의 음악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잠시 귀국길에 올랐던 헨델은 곧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결국 귀국 명령을 무시하고 영국에 자리 잡아 앤 여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듬해 앤 여왕이 사망하고 의리를 저버렸던 게오르그 선제후가 영국 왕위를 물려받아 조지 1세가 되었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헨델은 고민하다 수상 음악을 작곡하여 왕의 측근들과 함께 악단을 이끌고 배에 올라 물놀이를 하는 왕의 배 옆에서 연주를 하였습니다. 왕은 이 훌륭한 음악의 작곡가가 헨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과거의 섭섭함을 흔쾌히 털어버리고 이후 앤 여왕 이상으로 헨델을 우대했다고 합니다. 음악도 훌륭한데 에피소드까지 행복한 결말을 맞으니 더없이 그 느낌이 좋습니다.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의 낭만음악 ‘한여름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극음악입니다. 여기에서의 ‘한여름밤’ 이란 밤이 가장 긴 하지 때의 성 요한제(6월 24일)의 전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양에서는 그날 밤에 여러 가지의 환상적이고 기이한 일들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은 환상을 그린 우화 같은 희곡으로서, 시와 유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멘델스존의 극음악 역시 환상과 동심으로 가득 차 있죠. 그중 첫 번째 곡 ‘스케르초’는 날아오를 듯 가벼운 목관악기의 리듬이 마법의 숲 속에서 요정들이 노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후 요정의 숲에서 벌어지는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결혼행진곡’은 바로 이 극음악에 등장하는 연인들의 화려한 결혼식을 위한 음악입니다. 예식을 마치고 이 세상을 향하여 행진하는 신랑, 신부를 위한 축복의 음악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제 산과 바다로 나아가 보겠습니다.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직접 알프스의 산악지방인 갈미슈에 산장을 마련해, 조석으로 산의 경치에 매료되어 ‘알프스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음악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고, 악기 편성에 있어 폭풍의 흉내를 낼 수 있는 바람 기계, 천둥 기계, 많은 타악기, 알프스 지방의 목장에서 들을 수 있는 소방울 등을 사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12개의 호른과 2개의 트럼펫, 트롬본이 사용되는 등 대규모 편성으로 호쾌한 알프스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대에는 순 음악을 추구하는 브람스파와 효과와 스케일을 중시한 바그너파의 논쟁이 심했는데, 슈트라우스는 처음에는 브람스파의 음악 노선을 지지하다가 진보적 바그너파로 전향하여 표제 음악적 교향시라고 일컬어지는 알프스 교향곡을 쓰게 됩니다.
알프스를 오르던 사람들이 산을 오르다가 장엄한 일출을 만나게 되고, 찬란하게 묘사된 폭포와 목장의 종소리가 들리는 초원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다 아찔한 빙하와 마주치게 되고 위험한 순간들을 극복하며 산 정상에 도달한다는 이야기를 유려하고 장엄하며 때로는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바다’는 3곡으로 구성된 바다의 풍경화입니다. 바다가 주는 인상을 회화처럼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제1곡 ‘바다 위의 새벽부터 한낮까지’는 바다의 물결과 햇빛의 눈부심이 여러 가지 악기에 의해 그려지고 있으며, 제2곡 ‘물결의 희롱’은 밀려왔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다가 밀려오는 파도를 감각적으로 묘사합니다. 마지막 제3곡 ‘바람과 바다의 대화’는 앞의 두 곡을 종합한 것으로서 바람과 바다의 대화를 광풍 같은 현의 상행 트레몰로와 그에 응답하는 목관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드뷔시의 ‘바다’는 우리가 바다에서 쉽게 연상하는 유려하고 이해가 쉬운 느낌의 음악은 아닙니다. 도리어 낭만주의 음악에서 자주 나타나는 환상과 공상을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려는 움직임, 그러한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드뷔시가 사용하는 5음 음계와 반음계적 화성은 독특한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 구름, 바람, 냄새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순간적인 인상을 음악 속에 고정하려고 했고, 선율의 움직임이나 운동성보다 음악의 미묘한 음색을 통해 바다를 그려내고자 했던 드뷔시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 어떤 의미에서 클래식 음반에 있어 음반의 추천은 무의미합니다. 수많은 명연이 존재하므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반으로 먼저 음악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비발디 / ‘사계’ 중 ‘여름’
- 펠릭스 아요(바이올린), 이 무지치-필립스 DP 0100
헨델 / ’수상 음악’
- 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알렉산더 기본스 - 샨도스 8382
멘델스존 / ‘한 여름 밤의 꿈’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쿠르트 마주어 - 텔덱 46323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알프스 교향곡’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베를린 필 - DG439017
드뷔시 / ‘바다’
- 프랑스 방송교향악단/ 장 마르티농 - EMI CDM 69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