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동차회사는 정부 소유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레이트 월과 지리는 민간 소유이다. 두 회사는 가장 비전 있는 중국 회사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중국시장이 성숙되고 교통정리가 될 때 상대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회사다.
어느 나라든 자동차산업의 초창기에는 다수의 회사들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1920년대 이후 20년 동안 자동차회사의 절반이, 유럽은 80%가 사라졌다. 언젠가는 중국의 자동차업계 역시 교통정리가 될 테지만, 아직은 교통정리가 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늘었다. 2006년에는 등록된 제조사 수가 120개였는데, 2013년에는 150개 이상이다. 인수합병 소식도 드물다.
중국시장은 합작사가 주도한다. 권력을 쥔 정부 또는 지방정부 소유의 회사와 대형 외국회사가 만났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사이에서 중국 브랜드의 회사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은 계속 밀려 왔다. 대도시의 신차 등록제한도 중국 브랜드에는 악재이다. 대도시 소비자는 돈이 많아도 등록 제한 때문에 여러 대를 구입하기 어렵다. 이왕 한 대 살 거 좋은 차, 믿을 만한 브랜드를 산다. 돈 많은 사람은 중국 브랜드를 살 생각이 별로 없다. 실제로 보편적인 인식도 안 좋다. 거기다 합작사의 외국 브랜드를 ‘자기네’ 차로 인식하기도 한다.
중국의 메이저 (토종)자동차회사는 그레이트 월, 지리, 체리, BYD 등이 있다. 이들 회사의 연간 판매는 대략 30~80만대 수준이다. 연 2,000만대가 넘는 중국시장의 규모를 생각할 때 이 정도의 판매량으로 메이저 운운하는 것은 약간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선 중국 브랜드의 차를 연 50만대만 팔아도 ‘메이저’로 인식된다. 메이저 중국회사 중에서는 그레이트 월이 연 100만대에 가장 근접해 있다.
그레이트 월은 중국회사 중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판다. 1984년에 설립됐으며 본사는 허베이 성 바오딩에 위치해 있다. 그레이트 월은 초창기부터 트럭에 강세를 보여 왔다. 그러다 중국시장이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그레이트 월도 덩달아 세가 커졌다. 정확히는 SUV의 붐에 제대로 편승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중국 최대의 SUV 제조사가 되었는데, 이 회사는 이미 1998년에 중국 최대의 픽업 제조사로 이름을 날린 터였다.
사실 그레이트 월의 승용차 역사는 깊지 않다. 1984년에 설립됐지만 2010년까지는 트럭만 만들어왔다. 그러다 SUV를 개발한 게 대박을 쳤다. 참고로 그레이트 월은 2009년 연간 판매가 22만 5,000대, 2010년에도 39만 7,000대에 그쳤다. 당시만 해도 체리가 1위였다. 하지만 하발 H 시리즈가 나오면서 그레이트 월의 판매는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브랜드는 그레이트 월과 하발 두 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판매의 대부분이 하발에서 나온다. 그레이트 월의 주요 공장은 바오딩에 있고, 2011년에는 톈진에도 공장을 열었다.
그레이트 월이 다른 중국회사와 다른 점은 ‘독자’적이라는 것이다. 많은 중국회사들이 독자 브랜드를 가짐과 동시에 외국회사와 합작을 하고 있다. 지리만 해도 합작은 아니지만 볼보를 인수해 중국에서 생산하고 기술 교류도 한다. 하지만 그레이트 월은 예외다. 합작도 없고 지리처럼 다른 회사를 인수하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중국회사 중에서는 흔치 않은 케이스다.
그레이트 월의 장점은 마진이다. 한 중국 조사에 따르면 그레이트 월의 대당 마진이 가장 좋다. 중국은 보편적으로 구형 플랫폼 및 기술을 사용해서 대당 마진이 좋은데, 그레이트 월은 주력이 SUV이기 때문에 더 좋다는 분석도 있다. 참고로 그레이트 월의 회장 웨이젠쥔(Wei JianJun)은 2015년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14위의 부자이다. 2010년만 해도 웨이젠쥔의 포브스 순위는 103위였다. 이는 2010년 이후 그레이트 월의 판매 볼륨이 늘어난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2014년에는 순위가 10위까지 올라갔었다. 참고로 중국 자동차업계에서 작년 순위 20위 안에 든 인물은 웨이젠쥔이 유일하다.
오늘날 그레이트 월을 지탱하는 모델은 하발 H6이다. 하발 H6는 굳건하게 SUV 세그먼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는 티구안, CR-V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도 했지만 재작년부터는 독주해 오고 있다. 티구안 신형이 나오기 전까지 하발 H6의 독주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발 H6는 월간 판매가 4만대를 넘을 때도 많다. 현재 유일한 경쟁자는 바오준 560밖에 없다.
그레이트 월의 작년 판매는 85만대를 넘었다. 중국회사 중에서는 돋보이는 실적이지만 SUV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게 단점이자 불안사항이다. 그리고 H6와 H2, H1을 제외한다면 다른 SUV의 실적이 만족스럽지 않다. 세 모델이 하발 브랜드 판매의 95%를 차지한다. 작년에는 고급화 전략의 일환으로 H8, H9 같은 고급 SUV를 출시했지만 반응은 좋지 않다. 두 차의 월간 판매는 1,000대를 조금 넘는 정도다. 작년 그레이트 월의 SUV 판매는 66만대 이상으로 중국 SUV 시장에서 10.6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합작사를 상회한다. 그레이트 월의 올해 판매 목표는 95만대이다.
또 다른 메이저 민간 회사로는 지리가 있다. 1986년에 설립된 지리의 공식 회사명은 저장 지리홀딩그룹이다. 본사는 저장성 항저우에 있고, 총 고용 인력은 1만 8,000명을 넘는다. 에어컨 부품사업으로 시작해 자동차가 주력이 된 회사다. 이제는 엔진과 변속기도 자체적으로 만든다. 지리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행운을 뜻한다.
지리는 현 회장인 리 슈푸가 창업했다. 리 슈푸는 저장성 타이조우 출생으로, 2011년의 포브스 집계에서는 중국 35위, 작년에는 38위의 부자로 선정됐다. 지리의 첫 사업은 에어컨 부품과 냉장고였고, 모터사이클을 거쳐 자동차로 진출한 케이스다. 90년대 중반까지는 모터사이클이 주력이었다. 그리고 승용차 생산 승인을 받은 게 1999년이다. 자동차 역사는 길지 않다.
지리는 강력한 자금을 바탕으로 외국 회사를 인수해 왔다. 영국 택시 TX4의 제조사 MBH(Manganese Bronze Holdings)와 호주의 변속기 회사 DSI(Drivetrain Systems International), 그리고 볼보가 대표적인 예이다. 2013년에는 영국의 전기 밴 제조사 에메랄드 오토모티브도 인수했다. 거기다 중국에서는 5개의 대학도 소유하고 있다. 모터쇼 부스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는 학생들도 지리 소유의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받는다.
지리의 판매는 꾸준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2003년만 해도 연간 판매가 7만 3,000대에 불과했지만 2009년에는 32만대를 넘었고, 2010년(41만 4,000대)에는 처음으로 40만대를 돌파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판매가 올랐다. 지난 2년은 지리가 내실을 다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판매가 전년의 54만대에서 42만대로 뚝 떨어졌다. SUV 라인업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이고, 신차도 많지 않았다. 반면 작년에는 53만 2,000대로 다시 반등했다.
지리는 중국에서만 10개의 공장을 가동중이고, CKD와 SKD를 합한 해외의 생산라인도 9개이다. 지리의 첫 공장은 저장성 린하이, 두 번째는 닝보 베이룬이다. 지리에게는 베이룬이 가장 중요하다. 베이룬 공장에서만 지리의 베스트셀러 EC7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EC7의 연간 판매가 대략 17~20만대 사이이다. 지리 전체 판매의 약 40%에 해당한다. 대단히 중요한 모델이다. EC7은 한때 판매가 주춤했지만 터보 모델이 나오면서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다.
거기다 베이룬에서 멀지 않은 춘시아오에도 공장이 가동됐다. 춘시아오에서는 지리의 새 기함 GC9이 생산된다. GC9은 피터 호버리 영입 이후 나온 첫 번째 모델이고, 기존의 지리와는 다른 고급 모델을 지향한다. 의미가 큰 모델이다. GC9은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2016 중국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 브랜드의 차가 중국 올해의 차에 선정된 것은 지리 GC9이 처음이다. 지리는 해외 판매의 비중도 높은 편이다. 해외 판매가 전체 판매의 약 20%를 차지한다.
지리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볼륨 확대보다는 내실을 다지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판매가 부진한 브랜드를 없앤 게 한 예이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준비해온 볼보와의 시너지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리와 볼보가 설립한 CEVT(China Euro Vehicle Technology)에서 CMA로 불리는 새 모듈러 플랫폼이 개발됐고, 여기서 차세대 차들이 나온다. 이미 CMA 플랫폼에서는 새 SUV NL-3가 출시된 상태다. 플랫폼을 간소화하는 전략도 추진중이다.
지리는 다른 중국회사보다 비전이 있다. R&D 및 기술에 투자를 많이 하고, 인재도 많이 영입한다. 최근 몇 년 간의 행보를 보면, 앞을 내다보는 경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리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리 슈푸의 리더십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2009년 11월에 중국의 헨리 포드라는 타이틀로 리 슈푸 회장을 소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