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필수품이다. 모두 다 자동차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거의 모두 다 차를 이동수단으로 삼고 있는 시대이지 않은가. 그래서 당연하게도 영화 속에서도 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지면을 빌어 영화 속에서 크고 작은 의미를 갖는, 모티브가 되는 자동차, 특히 한국의 자동차들을 모아 본다.
언제나 단정하고 깍듯하고 능력 있고 인망 있는 오정석 상무. 늘 자기 자리를 단정하고 믿음직스럽게 지켜 온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세월은 반갑지 않은 변화를 안겨 준다. 아내의 암이 재발하고 언제나 청춘일 줄 알았던 육신은 화양연화를 지나 시들어간다. 그런 그의 마음에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추은주 대리가 들어온다.
긴긴 세월 동안 무던하고 성실하게 영화를 찍어 온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에는 기아K7과 soul이 등장한다. 오상무가 타는 K7는 실용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안정감과 남성적인 면을 풍기며 오상무의 캐릭터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리고 추대리가 모는 기아 soul은 흰 바디에 빨간 루프다. 젊고 신선하고 열정을 잔뜩 품고 있는 그녀의 캐릭터 그대로다.
강풀의 웹툰 <이웃사람>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이웃사람>에는 현대 NF쏘나타가 모습을 보인다. 재개발이 추진 중인 강산맨션에 사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는 평범한 일상이 흐르는 듯 보이지만 누군가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마주치게 되는 곳이다.
수상쩍기 이를 데 없는 102호 남자. 이 남자의 차는 NF 소나타다. 이 차는 영화의 처음부터 범인이 102호 남자임을 보여주고 그의 차가 범행에 이용되는 도구임을 보여주는데 결국 이 차는 범인이 시시때때로 주민들과 부딪히며 긴장의 시너지를 높여가고 대립하게 되는 모티브로 작용하면서 팽팽한 대립의 기제로 작용한다.
용병출신의 여훈은 납치된 아내를 구하려는 의사 태준과 파트너가 되어 그들을 위험에 몰아넣은 실체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실마리를 찾은 여훈은 쌍용 무쏘를 몰고 비리와 범죄의 온상인 광역수사대 건물로 돌진해 범죄의 실체인 송반장의 코앞까지 들어간다. 굉장한 돌파력으로 여훈과 함께 하는 무쏘는 여훈의 동지가 되어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누군가와 새로운 사랑에 빠질 것을 꿈꾸지만 글로리아는 이제 더 이상 20대가 아니다. 나이 들어 노화된 그녀의 몸은 이제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내오지만 글로리아는 여전히 일상 속에서 운전대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차는 기아 프라이드. 지구의 반대편 칠레에서 ‘기아’라는 이름을 당당히 달고 거리를 누비는 프라이드는 어딘가 글로리아를 닮았다.
촉망받는 기수 승호는 큰 사고를 당하며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 한쪽 눈의 시력, 쌓아올린 명예 그리고 이름마저 잃은 그. 그랜저 XG를 몰던 그가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렇게 오만하지 않았더라면 ...
그랜저 XG는 승호의 모든 것이 걸린 오브제다. 눈앞에 펼쳐진 탄탄대로와도 같은, 명예와 부가 약속된 승호의 미래. 하지만 한 순간 오만과 방심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의 꿈을 대변하는 자동차다.
하루 종일 세차게 비가 내리는 그 날. 아내는 집을 나갈 예정이고 짐정리를 하느라 부산하다.
여자와 남자. 그들의 하루를 담고 있는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그날 이전의 어느 날, 출장 가는 아내를 태우고 공항에 데려다 주는 남편의 차는 르노삼성 SM3다. 그 차에서 그는 아내에게서 다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집을 나갈 것이라는 소릴 듣는다.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의 기억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차였을 그 공간에서 여자는 가혹하게도 남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버린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이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월터 미티.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는 다른 인물로 살고 있다. 그가 사진작가 숀의 ‘삶의 정수’를 찍은 필름 한 조각을 찾아 가는 여정은 뜻하지 않은 신선함과 저릿거리는 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간발의 차이로 놓치게 되는 숀을 찾아가다보니 비행기부터 스케이트보드까지 월터는 여러 가지 이동수단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대우 마티즈가 눈에 들어온다. 그린란드에 도착해 차를 렌트해야 하는 그에게 주어진 차는 빨간 마티즈와 파란 마티즈. 빨간 차를 골라 타면서 월터는 자신이 이렇게 멋지고 어마어마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티즈는 월터의 모험을 시작하게 하는 작지만 큰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인셉션’은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가 꿈을 훔치고 생각을 심는 톰 코브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이 기발한 이야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단번에 앗아갔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클로즈업되며 돌아가던 팽이는 아직도 사람들의 논란의 대상이다. 톰을 태우고 비 내리는 도시를 질주하다 기차와 충돌하는 현대 제네시스는 강렬한 영화의 이야기만큼이나 강렬한 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5년의 시간은 명랑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던 헨리를 분노와 짜증 가득한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도시의 도로와 자동차들로 그의 짜증는 극에 달하는데 갑자기 달려온 택시가 그의 차를 들이받으면서 그는 폭발해버린다.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황당하게도 남은 시간이 고작 90분이라고 말한다. 헨리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헨리의 차를 받은 택시는 기아 세도나, 국내명 카니발이다. 택시기사와 싸우고 돌아서지만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또 다시 타게 된 택시. 헨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이 차는 결국 그의 시간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