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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VOL.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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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3

STORY03

자동차 에세이
영화 속 다양한 자동차 변주곡

2010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은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로 타인의 꿈과 접속해 생각을 빼낼 수 있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복수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린 ‘메멘토’(2000)로 일찌감치 천재성을 입증한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는 지능적이고 흥미로웠다. 영화 속 주인공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쫓기면서 운전하는 차가 나오는데 제네시스였다. 아직은 독립 브랜드로 나오기 전 2008년 첫 선 보인 G80의 1세대 모델. 당시 수출용 모델에는 현대 마크를 달고 나왔다. 좋아하는 감독, 배우가 나오는 외국영화 속에서 본 제네시스는 반갑기도 했고 거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멋진 모습이었다. 상상력이 더해진 영화의 효과, 자동차 브랜드가 여기에 관심을 쏟는 이유일 것이다.

‘앤트맨과 와스프’의 벨로스터 앤트카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Ant-Man and the Wasp)에는 벨로스터, 코나, 싼타페 등 3대의 현대차가 등장한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 ‘앤트맨’(2015)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현대차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마블’(MARVEL)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들 차를 촬영용으로 제공한 것이다.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는 앤트맨의 ‘벨로스터 앤트카’는 보라색 랩핑과 노란색 불꽃 장식으로 치장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질주하며 현란한 도심 카체이싱을 펼친다. 영화를 통해 벨로스터의 매력이 업그레이드되었음은 물론이다. 코나와 싼타페 또한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이 직접 운전하는 차로 등장해 활약을 펼친다.

‘미션 임파서블’과 BMW의 오랜 콜라보레이션

이러한 자동차회사와 영화제작사의 콜라보레이션은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서도 활용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BMW의 관계를 꼽을 수 있다. 신작 ‘미션 임파서블 : 풀아웃’에는 608마력 엔진을 얹고 브랜드 최초로 네바퀴굴림(4WD) 방식을 채택한 신형 M5를 비롯해 기함 7시리즈가 등장한다. 그리고 1986년식 5시리즈가 등장해 연식이 오래 되었어도 여전히 강력한 성능을 지닌 차임을 표현한다. 또한, BMW의 모터사이클 R nineT 스크램블러도 등장해 파리 도심 한복판의 긴박한 추격신을 보여준다. 마치 한편의 BMW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BMW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픽쳐스와 협업을 이어온 것은 지난 2011년부터다. 2011년 개봉된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는 BMW그룹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 BMW i8에 영감을 준 ‘BMW 비전 이피션트다이내믹스’ 콘셉트카가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모래바람 속 BMW X3 추격신 또한 인상적이었다. 2015년 개봉한 다섯 번 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에서는 주인공 톰 크루즈가 은색 M3을 타고 모로코 시내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카체이싱을 펼쳤고, 산악도로에서 펼쳐진 고속 추격신에서는 BMW 모토라드 S 1000 RR이 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인생의 변주곡 ‘버닝’과 ‘오베라는 남자’

영화 속에서 자동차는 이처럼 화려한 면들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김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작가지망생 ‘종수’의 기아 봉고 트럭(그의 아버지 차이지만)과 부잣집 아들 ‘벤’의 포르쉐 911 카레라가 극명한 대척점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대사를 통해서도 ‘일하는 자’의 자동차와 ‘노는 자’의 자동차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종수의 여자친구 ‘해미’의 짐가방을 봉고의 화물칸에서 911의 보닛 아래로 옮기는 순간 세 사람의 엇갈린 시선을 통해 엇갈린 운명을 예고한다.

사라진 ‘해미’를 찾기 위해 ‘벤’의 주변을 서성대던 ‘종수’가 ‘벤’의 뒤를 쫓는 장면은 감독이 두 차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담겨있다. 한강철교와 63빌딩이 배경으로 스쳐 지나가는 88올림픽대로에서 벤의 911은 지그재그로 다른 차를 추월하며 빠르게 사라져가고 봉고의 운전석에서 종수의 시선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이 되어 그저 사라지는 911의 꽁무니를 바라본다. 도달할 수 없는 거리는 쓸쓸하다. 그리고 영화는 제목처럼 파국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스웨덴 영화답게 사브, 볼보 이야기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오베’는 일평생 사브만 타는데 그의 절친 ‘루네’가 볼보를 탄다는 이유로 멀어진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화해를 시도하는 오베. 화해를 받아들인 루네를 자신의 새차를 소개하는데 BMW다. “언제까지 볼보만 탈 수 없잖아…” 루네의 변명에 대꾸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오베, 이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오베가 사브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 어머니를 일찍 여윈 오베는 아버지가 모는 사브 92 옆좌석에 앉아 “사브만큼 좋은 차는 절대 없어”라는 아버지 말을 금과옥조처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소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곧 그 뒤를 따라가겠다고 다짐한 오베는 자살을 시도하다가 여러 차례 방해를 받는다. 그 첫 번째 방해꾼으로 등장하는 차가 바로 현대 i30 왜건이라는 게 재미있다. 이웃집으로 이사 온 가족이 i30 왜건 뒤꽁무니에 트레일러에 매달고 나타난 것. 역정을 내면서도 오베는 운전이 서툰 차주인 대신 후진 주차를 직접 해주기도 하는데….

영화는 자동차 에피소드만 따라가도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오베에게 인생은 누구보다 잔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옆자리에 이웃집 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면서 “이런 게 사람 사는 거지”라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옆에 태우고 그와 똑 같은 말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최영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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