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전기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한 번 충전으로 400km 넘게 달릴 수 있는 긴 주행거리, 그리고 새로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다. 기존에는 내연기관 차의 플랫폼을 이용해 전기차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기차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이었던 셈. 하지만 이를 순수 전기차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엔진을 비롯한 기본적인 핵심 부품의 구성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이기상 현대기아차 환경기술센터장 전무는 “2020년 이후 한번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 가능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게 될 경우 차급에 따라 배터리 용량을 다르게 변경, 적용할 수 있다. 그만큼 대중적인 전기차를 만들기 쉬워지며 치열해지는 세계 전기차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 발 앞서가고 있는 브랜드는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은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위한 전략 ‘일렉트릭 포 올’(Electric for all)을 발표하며 전기차 전용 MEB 플랫폼(Modular Electric Drive Matrix)을 처음 공개했다. 디젤 게이트 이후 전동화 전략에 몰두하고 있는 폭스바겐은 전기차를 앞세워 어두워진 이미지를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
폭스바겐이 최근 공개한 전기차 전용 MEB 플랫폼
폭스바겐은 MEB 플랫폼 기반의 첫 전기차 ID. 시리즈의 생산을 2019년 말부터 츠비카우(Zwickau) 공장에서 시작하게 된다. 토마스 울브리히(Thomas Ulbrich) e-모빌리티 담당 폭스바겐 브랜드 이사회 임원은 "MEB 플랫폼은 폭스바겐 역사상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이며, 비틀에서 골프로의 전환에 버금가는 기술적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울브리히는 “MEB 플랫폼을 통해서 폭스바겐그룹 내에서만 1,000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22년 말까지 폭스바겐그룹 산하 4개 브랜드에서 소형차에서부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차종인 불리에 이르기까지 총 27종의 MEB 플랫폼 기반의 모델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MEB 플랫폼의 특징은 대용량 배터리를 차량 바닥 면에 설치할 수 있는 설계에 있다. 이를 통해 훨씬 넓은 내부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행거리를 늘리면서 주행안정성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MEB 플랫폼으로 생산하는 ID. 패밀리의 모든 모델들은 빠른 충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고속 충전 시스템을 사용하면 폭스바겐 그룹 컴포넌트가 개발한 강력한 배터리 시스템 덕분에 약 30분 만에 배터리를 80%까지 충전 할 수 있다. e-모빌리티 제품 라인의 책임자인 크리스천 센거(Christian Senger)는 "새로운 세대의 고성능 배터리는 모듈형 디자인과 멀티셀 형식 덕분에 더 작거나 더 큰 ID. 모델에도 설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ID. 패밀리의 섀시 구조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일지감치 성공을 거둔 브랜드는 테슬라다. 차량 바닥 전체에 배터리팩을 설치하는 것으로 차별화했다. 그리고 테슬라는 최근 모델 3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혁신 기술을 적용했다. 출발점은 타이어였다. 테슬라에 따르면 고성능 전기차 타이어는 내연기관 차량과 달라야 한다. 무거운 차체를 떠받치며 가속을 견뎌내는 것은 같지만 전기차는 회생 에너지를 위한 브레이킹을 할 때도 계속해서 토크를 감당해야 한다.
전기차 무게의 상당 부분은 내연기관 차보다 낮은 위치에 자리 잡는다. 차 바닥 밑에 배터리팩을 넣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너링을 할 때 바깥쪽 한 쌍의 타이어에 수직압력이 덜 쌓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테슬라는 트레드 강성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동시에 코너링 그립과 낮은 롤링 저항을 뒷받침할 새로운 타이어 성분을 개발했다. 타이어에는 방음 폼을 넣어 타이어 틈바구니에서 증폭되는 소음을 억제했다.
아울러 엄격한 전방 충돌 시험에서 앞 서스펜션을 최대한 보호하도록 설계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직접적인 부상을 입는 것 이외에도 도어가 잠기거나 전기차 배터리가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바퀴와 서스펜션이 타격을 받을 때 끊어지도록 설계한 희생링크를 추가했다. 그래서 바퀴가 제3의 링크 주위를 돌아간다. 이로써 차체 바깥으로 바퀴가 움직이고, 차와 승객 그리고 배터리를 충격으로부터 보호한다.
아우디가 지난 8월 선보인 순수 전기 SUV ‘e-트론’(e-tron)은 여러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우선 e-트론은 앞뒤 구동축에 1개씩 두 개의 전기모터를 달았다. 배터리는 용량 95kWh로 파우치형 셀이며 삼성SDI와 엘지화학에서 공급받는다. 아우디는 e-트론이 시장에 나온 전기차 중 최대 150kW급 고속충전기로 충전할 수 있는 최초의 전기차라고 강조한다. 참고로 테슬라 슈퍼차저 전력은 145kW며, 2단 충전기는 1대당 최대전력이 120kW다.
아우디 e-트론의 배터리 팩은 긴 모듈 36개로 구성된다
모든 배터리 모듈에는 60Ah 파우치형 셀 12개가 들어간다. 이는 닛산 리프보다 2배 더 높고 테슬라 모델 S와 X에 들어가는 원통형 배터리 셀보다 10배 더 높다. 아우디는 파우치형 셀을 넣어 만든 배터리 모듈이 테슬라의 것보다 포장 및 냉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모양도 사각형이라 더 효율적으로 결합할 수 있고 냉각이나 가열하는데 더 넓은 표면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우디 e-트론의 배터리 팩은 무게가 700kg이며 긴 모듈 36개로 구성된다. 그중 32개는 앞뒤 구동축에 달린 충돌 시험을 통과한 주조 알루미늄 케이스 안에 들어가 있다. 4개는 뒷좌석 아래 있는 하우징에 배치된다. 파우치형 셀은 동유럽에서 만들고 이를 모듈로 만들어 브뤼셀에 있는 e-트론 생산 공장으로 옮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조립해 95kW 배터리 팩을 완성한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에 주행거리 460km에 이르는 코나 EV를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기술력에서 자신감을 갖고 있다. 2020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구축하면 주행거리와 성능, 충전 등에서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그만큼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폭스바겐그룹 뿐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EQ 브랜드를 앞세우고 있다. 이미 전기차 리프로 성공을 거둔 닛산은 르노와 전기차 플랫폼을 공유하며 하이브리드에 집중해온 토요타도 차세대 전기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은 보다 혁신적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본격적인 전기차 경쟁 2라운드에 들어서고 있다.